어려운 때일수록 시장경제의 원칙을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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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론]2008-07-09 | 강원대학교 경제무역학부 교수 민경국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정책을 보고 있으면, 작년 대선 때 그 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국민이 왜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는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좌파 집권 10년 동안 저성장, 일자리 불안과 빈곤층의 증대라는 경제불안의 늪에 빠진 나라경제를 살려내라는 것이 가장 큰 주문이었다.
기업부문, 노동부문, 복지부문, 교육부문 등 좌파정부가 10년 동안 도처에 박아 놓은 ‘규제대못’을 제거하고, ‘신의 직장’으로 만든 공기업을 민영화하여 자유시장경제를 확립하는 것, 이것이 대선을 통해서 확인된 이명박 정부의 역사적 과제이다. ‘2008년 체제’는 ‘잃어버린 10년’의 좌파체제와는 전적으로 달라야 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단기적이고 편의적인 선심성 정책 문제 있어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명박 정부는 대선의 역사적 의미를 배반하고, 오히려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의 길을 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좌파정치의 핵심인 포퓰리즘에 야합하는 선심성 정치가 난무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저소득층을 위해 통신요금을 대폭 감면해주겠다는 것, 유가 앙등에 취약한 계층에게 월 5,000~2만 원 정도를 되돌려주겠다는 것, 이것은 단기적이고 편의적인 선심성 정책의 전형이다.
최근에 발표한 기업환경 개선책도 효과 없는 선심성 정책이기는 매한가지이다. 군사시설보호구역에서 방대한 땅을 해제하고 수도권에서 창업하는 기업의 취득·등록세를 낮추겠다는 것, 이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수도권 규제가 풀리지 않는 한, 알맹이가 빠진 실효성 없는 탈규제이다. 지방의 반대가 두려워서인 듯 수도권 규제완화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중장기 에너지 정책으로 매우 중요한 원자력발전소 증설계획도, 심지어 대선의 핵심공약으로 내세웠던 공기업의 민영화까지도 후순위로 미루었다. 좌파적 환경단체와 공기업 노조의 반발이 두려워서일 터이다. 교육개혁과 의료서비스 개혁도 반발이 두려워서인지, 정부는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있다.
쇠고기 파문에 여론의 역풍으로 쓰라린 고통을 당한 정부가 민심의 동향에 신경을 쓰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특정계층이나 이익집단의 요구, 그리고 이들에 편승한 좌파집단의 반발에 굴복하는 것은 민심의 동향을 살핀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민심을 달랜다는 명분으로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거나 국민세금으로 특정계층에 돈을 퍼주고, 이익단체의 기득권 때문에 규제개혁을 소홀히 하거나 민영화를 덮어둔다면, 이것은 좌파 10년 동안의 정책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사실상 계승하겠다는 것과 차이가 없다.
전임 정부의 길을 답습하다가 치명적으로 실패한 정부가 있다. 그것이 루스벨트(제32대 미국 대통령, 재임기간 1933~1945년) 정부다. 그의 전임자였던 후버 대통령(제31대 대통령, 1929~1933년)은 철저한 간섭주의자였다. 서민층을 보살핀다는 명분으로 세금을 펑펑 쓰고, 노동자를 위한다고 노동시장을 경직적으로 만들었다. 보호무역주의는 가장 악명 높은 정책이었다. 經濟史家들이 입증하듯이, 대공황은 후버 정부의 간섭정책 탓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루스벨트는 대선기간 동안 후버 정권의 간섭정책을 혹독하게 비판하면서 조세삭감, 건전한 통화, 정부간섭의 억제 등을 통하여 대공황에 빠진 미국경제를 구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권을 장악한 후에는 경제불황의 심각성이라는 이유로 약속했던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버렸다. 그 대신에 후버 정부의 모든 정책을 계승·확대했던 것이다. 친노동정책의 대표격인 와그너법, 기업규제를 강화하는 독과점규제법, 낭비적인 각종 토목사업과 취로사업 등 좌파적인 포퓰리즘에서 비롯된 뉴딜정책이 그것이다.
뉴딜의 성과는 어떠했는가? 그것은 참혹했다. 그의 집권기간 동안 내내 평균 실업률은 17.2%였고 14% 아래로 내려간 때가 없었다. 생산도 1929년의 70%, 민간투자는 1929년의 40%, 수출은 60% 정도였다. 뉴딜이 대공황으로부터 미국경제를 구출했던 것이 아니라 공황을 심화시켰고, 이를 장기화시켰을 뿐이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루스벨트가 후버 대통령의 간섭정책을 포기하고 자기의 대선 공약대로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시행했더라면 대공황의 늪에 빠져 있던 미국경제를 살렸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미국경제를 공황으로부터 구출했던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 전쟁이 끝나면서 회복되기 시작했던 자유무역과 시장경제였다는 것이 경제사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반면, 이명박 정부가 교사로서 루스벨트의 뉴딜로부터 배울 점은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의 간섭정책을 繼走해서는 한국경제의 심각한 불안을 해결할 수가 없고 오히려 그것을 더욱 더 심화시키고 장기화시킨다는 점이다.
조세를 줄이고 정부지출도 줄이고,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돈줄도 묶고, 노동시장 규제를 비롯하여 기업규제를 풀어 없애서 자유무역과 시장경제를 확립하는 일, 이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그리고 이것이 대선을 통해 유권자들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주문했던 것이다.
고유가, 환율인상, 인플레이션, 저성장, 낮은 고용 등 경제가 지난해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러나 경제가 어렵다고 정부의 간여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는 것, 정부 간여는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라는 것, 이것도 뉴딜이 주는 중요한 교훈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우리는 시장경제의 자생적인 힘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위대한 장점은 내적인 또는 외적인 어떤 장애물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그 어떤 정부도 가질 수 없는 거대한 능력이다.
이것은 가격과 비용의 자율적인 조정을 통해서, 노동생산성과 경영효율성의 자율적인 제고를 통해서, 그리고 특히 개인들의 자발적인 저축과 투자를 통해서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자생력이다. 그래서 경제문제의 지속가능한 해법은 정부의 간여가 아니라 자유와 책임을 기반으로 하는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이다.
정부는 좌파집단의 포퓰리즘과 이익집단의 기득권에 휘둘리지 말고 일관되게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데에 매진해야 한다. 그리고 법치를 세워서 불법시위나 파업, 광고주에 대한 협박은 엄단해야 한다. 국가기강이 흔들리면 정권 그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좌파집단과 이익집단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혁하는 일은 쉽지 않다. 부단한 설득과 논박과 같은 이념투쟁이 절실히 필요하다. 개혁은 일종의 이념전쟁이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투철한 신념의 인물이 정부의 요직에 많이 있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주의는 반발세력을 설득하고 논박할 힘이 없다.
영국을 위기에서 구출하여 번영으로 이끈 신념의 정치인 마가레트 대처(M. Thatcher) 같은 인물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임에도, 이명박 정부의 요직에는 그런 인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8년 7월호 [시장경제 논단] 에 게재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