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제 확대 논의 동향과 문제점

[경제시론] 2014-05-09 | 한경연 기획조정실 실장 추광호

집단소송제 도입 확대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미 국회에는 집단소송제의 적용범위를 확대하고 소제기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여러 건의 의원발의안이 계류되어 있으며, 정부 내에서도 집단소송제 적용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반적인 의미로 집단소송이라 함은 원인이나 법률적 쟁점을 공통으로 하는 다수가 모인 집단의 대표자가 그 총원을 대표하여 위법행위의 금지나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는 소송의 한 형태로 정의될 수 있지만, 이하에서는 미국식 집단소송(Class Action)을 중심으로 검토한다. 즉, 가해자의 행위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에 피해자 중 일부가 소송을 제기하면, 나머지 피해자들도 그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소송의 당사자가 되어 재판의 결과가 미치게 되는 좁은 의미의 집단소송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실제로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여러 건의 집단소송 관련 의원발의 법률안들도 이와 같은 의미의 집단소송 개념을 상정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집단소송이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나라로는 미국을 들 수 있다. 기타 일부 국가에서 집단소송제가 도입되어 있다고는 하나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지는 않다.

미국과 EU의 집단소송제 논의 동향

미국의 경우 집단소송은 원칙적으로 연방민사소송규칙(Federal Rules of Civil Procedure) 제23조가 정하고 있는 집단소송절차에 따라 이루어진다. 다만, 이는 연방 차원의 규범이므로 각 주에 바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주에서 이를 근거로 한 집단소송 관련 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집단소송이 이론상으로는 소비자들의 각종 피해와 관련한 효율적 분쟁해결 및 보상책이 될 수 있지만, 실제 운용과정에서는 이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 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소송의 남발과 변호사의 사익추구, 이에 따른 막대한 기업 피해 등의 문제가 놓여 있다. 즉, 사익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변호사가 피해자들을 모집하여 ‘기획소송’을 제기하면, 허울뿐인 원고에 불과한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피해 보상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변호사만 막대한 이익을 챙기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의 집단소송의 대부분은 소송 도중에 화해로 끝나게 되는데, 이는 소송의 결과를 자신할 수 없는 변호사들과 소송이 계속됨에 따라 이미지 실추를 우려하는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화해 과정에서 실질적인 소비자 보호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소송을 당한 피해 기업은 막대한 배상비용과 기업 이미지 실추 등으로 인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거나 도산하는 결과까지 나오게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 같은 부작용을 이유로 여러 차례에 걸쳐 집단소송법이 개정되었다. 그 내용은 주로 소송제기 요건을 엄격하게 하고, 화해 성립 요건을 강화하며 변호사 보수를 제한하는 것들이다. 1995년의 증권소송개혁법(Private Securities Litigation Reform Act: PSLRA)에서는 소장의 기재 요건을 강화하여 변호사 주도에 의한 소송을 제한하고 변호사의 소송횟수를 제한하여 상습적 집단소송 제기를 막으며, 화해의 내용을 공개하고 변호사 보수와 손해배상액을 제한하였다. 또한 1998년의 증권소송통일기준법(Securities Litigation Uniform Standards Act)에서는 전국적 범위의 증권집단소송은 연방법원에 우선권을 부여하고, 연방법원에 주법원의 증거개시절차에 대한 정지 권한을 부여하였다. 이는 연방법원의 경우, 원고측 변호사가 피고측과 합의한 내용이 원고들에게 실질적인 현금 보상이 되지 않거나 보상조치에 비해 원고측 변호사에게 주어지는 보수가 과다한 경우 공정성과 합리성을 결여하였다고 판단하여 기각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주법원의 경우에는 합의안의 채택 가능성이 높고 변호사 보수에 대해서도 엄격하지 않아, 집단소송의 대부분이 주법원에 몰리는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2005년에는 집단소송공정화법(Bill of Class Action Fairness Act)이 제정되었는데, 여러 주에 걸쳐 있는 소비자 사기소송의 경우 연방법원의 관할로 하는 등 연방법원의 관할권을 더욱 확대하고, 변호사 보수산정 기준을 엄격하게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¹⁾

한편, EU에서는 소비자 피해에 대한 실질적인 구제방안 마련을 위한 오랜 논의가 있었으며, 2013년에 집단소송제와 관련한 권고안을 마련하였다. 그런데 권고안에서는 미국식의 집단소송제 도입을 배제하고 대신 단체소송제도의 도입을 권유하였다. 즉, 대표성을 충분히 담보할 수 있 는 적절한 단체가 피해자들을 모집하여 소송을 수행하도록 하였다.

또한 개별 피해자가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소송에 참여하게 되는 미국식 집단소송의 경우, 소송을 제기할지 여부에 대한 개별 피해자들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측면에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집단소송제 확대는 보다 신중한 검토 필요

우리의 경우 2005년에 증권집단소송법이 제정되어 주가조작, 분식회계, 허위공시 등의 경우에 집단소송이 도입되어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집단소송의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여러 의원 입법안들이 계류되어 있다. 하지만 집단소송제가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미국의 경우 그 폐해로 인해 지속적인 개정이 이루어져 왔으며, EU의 경우에도 오랜 논의 끝에 미국식 집단소송제의 도입을 배제하였다. 일본의 경우에도 한때 집단소송제 도입과 관련한 많은 논의가 있었으나, 기존의 일본 법체계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국 도입하지 않기로 하였다.

집단소송제는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는 제도이다. 소비자의 피해구제는 미비하고, 기업은 심각한 타격을 받으며, 변호사만 엄청난 이익을 보는 등 많은 문제점이 있다. 법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는데, 특히 소의 제기는 재판청구권으로서 피해자의 기본적 권리인데,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소송에 참여하게 되고 나아가 소송에서 패소한 경우에도 그 판결의 효력을 받음으로써 향후 자신의 권리를 실현할 방법을 차단하는 것은 중대한 기본권 침해가 될 수 있다. 실증적인 이유로도, 법리적인 이유로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1) 이 법안을 주도했던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이 법안의 서명식에서 행한 연설에서 “미국기업들은 집단소송과 같은 쓰레기 소송에 대응하느라, 매년 2,40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을 지출하지만, 이로 인해 미국의 근로자들과 기업들은 국제경쟁에서 뒤처지게 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에게는 부당한 비용을 부담시키며, 소비자에게는 가격부담을 안게 한다”고 하였다.

(ckh@keri.org)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4년 5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