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산업의 성장배경과 시사점

[경제시론] 2005-10-21 |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이태규

최근 극장가의 박스 오피스 상위권을 보면 한국영화의 독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한국영화의 강세가 계속되고 있다. 현재의 추세라면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올해도 무난히 50%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하는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4년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 59.3%였으며 이는 우리나라 영화산업에 대한 통계가 체계적으로 집계되어 발표된 이래 최고의 기록이다. 한국영화의 성장세가 본격화된 1990년대 후반 이전의 과거에도 50% 안팎의 높은 시장점유율을 기록한 적이 두어 차례 있었다. 1968년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48.9%였으며 1982년에는 51.3%를 기록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2004년의 한국영화의 성과는 과거 1968년과 1982년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과거에는 수입쿼터 등의 영향으로 수적인 면에서 압도적으로 한국영화가 많았었다. 1968년에 제작된 한국영화는 212편이었던 것에 비해 수입된 외국영화 55편에 불과하였다. 1982년에는 한국영화가 104편 상영된 데 비해 외국영화는 54편이 상영되는데 그쳤다. 하지만 2004년에 상영된 한국영화는 74편인데 비해 외국영화는 194편에 달하였다. 60%에 근접하는 높은 최근의 시장점유율은 압도적인 외화편수에도 불구하고 이룬 것이어서 더욱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가 지속적으로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영화의 질적 향상이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지만 이를 가능케 한 근본적인 배경에는 영화산업구조의 변화가 있다. 그 구조변화란 영화의 생산 및 유통이 과거와는 달리 제작?배급?상영단계를 수직적으로 결합한 대규모 영화사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산업에서의 수직적 결합은 영화가 제작?공급되는 여러 단계에서 발생하는 거래비용 및 영화수요의 불확실성에 따른 흥행위험을 감소시켜준다. 이와 같은 수직적 결합의 역할로 인해 영화의 안정적 공급통로가 확보되고 흥행수익이 다시 영화제작에 재투입되어 양질의 영화가 지속적으로 생산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갖추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가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수직결합한 대형영화사의 출현을 통해 영화산업의 효율화가 가속화되고 이들 영화사를 중심으로 영화의 공급구조가 정착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헐리우드 시스템을 들 수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는 수직결합한 대형영화사의 등장이 1920년대에 이루어진데 비해 우리나라는 이보다 거의 70여년 이상 늦게 영화산업에서의 수직적 결합이 시작되었는데 그 이유는 영화자본의 영세성에 있었다. 수직적 결합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타 분야에 있는 기업을 인수?합병 하든지 아니면 그 분야로 진출을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대형자본이 필요하다. 하지만 영세한 소규모의 영화사, 배급사, 극장 등으로 구성된 과거 우리나라의 영화산업에서는 수직적 결합을 통한 산업구조 전환을 주도할 만한 주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상황은 대기업들이 대거 영화산업에 진출하면서 바뀌게 된다. 외환위기 과정에서 상당수의 대기업들이 영화산업에서 철수하였지만 살아남은 일부 대기업에 의해 멀티플렉스의 도입이 이루어지면서 수직적 결합이 확산되었고 현재는 수직적 결합을 이룬 소수의 대형영화사들을 중심으로 영화산업이 재편되었다.

우리나라의 영화산업정책을 되돌아보면 영화사의 대기업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특히 박정희 정부는 영화제작사의 대형화를 위해 제작사 허가제 등을 통해 제작부문을 경쟁으로부터 보호하였으며 영화제작사에게 외화수입 독점권을 부여하여 자본축적을 도왔다. 그 외에도 외화수입쿼터, 스크린쿼터 등 각종 국내 영화시장 보호정책이 사용되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들 정책들로 인해 영화산업 내의 경쟁도는 낮은 수준이었으며 제작사의 지원기준이 시장에서의 질적 성과보다는 영화제작실적 등의 양적지표에 연계됨으로 인해 영화의 질적 향상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오히려 1980년대 중반에 이루어진 제작부문에 대한 각종 특혜 폐지 그리고 외화직배 허용 등을 포함한 일련의 시장개방 등이 단기적으로는 한국영화산업에 큰 타격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성장의 디딤돌 역할을 하였다. 즉 양질의 영화가 아니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경쟁적 환경이 조성되었고 이 과정에서 대기업이 영화산업에 진출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되었던 것이다.

이상의 논의가 시사하듯이 영화산업에서도 다른 산업의 성장과정에서 볼 수 있는 발전의 보편적 원리가 관철된다고 할 수 있다. 한 산업의 성장이라는 것은 그 산업 내의 모든 기업이 균등하게 발전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통하여 소수의 잘하는 기업위주로 자원의 집중 및 집적이 이루어지면서 그 산업도 발전하게 된다. 또한 이와 같은 발전의 과정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산업정책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이다. 영화산업의 경우 자원의 집중 및 집적이 수직적 결합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수직결합한 대형영화사에 의해 영화산업의 발전이 주도되는 것이다.

최근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기업에 의한 영화산업 지배에 대한 우려도 영화산업의 역사와 성장과정에 비추어 본다면 그 근거가 희박하다. 대기업이 영화산업에 진입할 초기에는, 대기업이 자본의 논리로 영화예술의 발전을 막는다, 상업주의로 인해 영화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등 갖가지 비판이 많았었다. 하지만 현재의 영화시장은 과거보다 훨씬 규모가 커졌고 훨씬 다양한 소재가 한국영화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오히려 세계 영화산업의 추세인 수직?수평결합의 확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대형자본의 영화산업 참여가 필요하고 이 과정을 통해 우리도 국제경쟁력을 갖춘 대형 엔터테인먼트 그룹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