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불안, 생산성 향상으로 대응하자

[경제시론] 2008-04-14 | 전경련 경제본부장 황인학

전세계적으로 물가불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하반기 이후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 경제살리기를 최우선과제로 두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게 물가불안 문제가 복병이 되고 있다.
올해 1월 소비자물가는 2004년 9월 이래 가장 높은 3.9%로 상승했고, 2월에는 3.6%로 약간 주춤했으나 여전히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3±0.5%)를 넘어선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생산자물가 또한 6%대로 상승세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물가불안 문제는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해외 원자재가격 상승 등에 따른 비용인상형(cost-push) 물가불안

최근 물가가 이렇게 뛰는 이유는 원유, 곡물 등 해외 원자재가격 급등, 중국제품의 수출물가 상승 및 원화가치 하락 때문이다. 이번의 물가불안은 국내요인이 아닌 해외변수에 의해 주도되고, 수요견인형(demand-pull)이 아닌 비용인상형(cost-push) 물가상승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예를 들면, 원유는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90달러대 중반을 넘는 초고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무역수지를 악화시키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유가상승으로 올해 1~2월의 원유수입액이 전년대비 55억 달러 증가하면서 무역수지는 50억 달러 적자를 기록하였다. 3월말 현재 철광석, 고철 등 철강 원자재와 구리 등 비철금속 가격도 2006년말에 비해 30~60% 넘게 올랐다. 2007년 초부터 국제곡물 가격 급등이 전세계 물가상승을 주도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2006년 말과 비교하면 국제 밀 가격은 113%, 옥수수는 39%, 대두는 90%나 급등하였다.
원자재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중국, 인도 등이 고성장을 지속함에 따라 세계 원자재 수요는 크게 늘어난 데 비해 공급확대가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달러화의 가치하락으로 투기자금이 상품 선물시장에 대거 유입되고 있어 원자재가격의 상승을 부추기는 측면이 크다. 곡물의 경우에는 중국 등의 경제성장과 함께 바이오연료 등 대체연료의 활성화로 추가수요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중국의 높은 물가상승도 우리의 수입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중국의 물가와 임금이 크게 증가하면서 중국산 주요 수입제품의 평균 가격 상승률이 14.4%에 달했다. 이 밖에도 지난해 하반기 이후 원화가치의 하락세 전환은 달러표시 수입물가를 올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 결과 2월 수입물가는 전년동월대비 22.2%나 급등하였는데, 이는 IMF 외환위기 이래 가장 큰 폭의 상승치이다.

정부의 미시적 접근법은 올바른 방향이나 효과는 제한적일 듯

물가불안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경제살리기 정책을 마음 놓고 펴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경제회복과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투자와 민간소비 등 내수가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물가가 불안한 상황에서 내수를 확대하기 위해 세금과 금리를 낮추면 물가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더욱 확산될 우려가 있다. 물가상승 기대가 높아지면 근로자들이 과도한 임금인상을 요구하게 되고 기업의 생산비용 증가로 물가는 더욱 오르고 국민경제는 침체에 빠지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현상마저 나타날 수도 있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잘 인식하고 물가안정을 기하면서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의 물가불안 문제에 대해 정부의 대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가상승 압력이 국내가 아닌 해외발 비용인상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금리를 높이고 유동성을 줄이는 등의 전통적인 총수요 관리정책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유류세 및 할당관세 인하 등 정부의 시장개입에 의한 비용상승 압력을 완화하고 경쟁촉진과 유통구조 개선 등 구조적·미시경제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거시안정대책이 한계가 있음을 감안할 때 바람직한 방식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미시경제적 접근은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면 자칫 물가관리방식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최근에 기획재정부에서 52개 민생상품을 선정, 세 부담 완화 및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겠다고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물가를 관리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구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단기대책도 세워야 하겠지만 좀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경제의 고비용 구조를 유발하는 제도적 요인들을 찾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노력을 병행해 나가야 한다. 준조세, 종합부동산세 등의 과도한 세 부담을 완화하고, 토지이용규제 및 복잡한 인허가 절차 등의 문제를 개선하여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최근의 물가불안은 수입자원의 가격앙등에서 시작된 것인 만큼 해외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대책도 보완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민간의 해외자원개발 활성화를 위해 자원개발 목적으로 설립한 해외현지 법인에 대한 투자세액공제 허용, 해외자원개발 융자예산의 지속적 확충, 고위험 국가에 대한 해외투자보험 지원 확대 등 금융·조세지원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28%에 불과한 국내 곡물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해외농업자원 개발을 위한 지원정책도 병행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물가급등, 생산성 향상과 노사화합으로 극복해야

그러나 기업들은, 정부 대책만으로는 글로벌 현상인 물가불안 문제를 단기간 내에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오르면 근로자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국민들 사이에서는 반기업정서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물가상승-임금인상-물가추가상승의 악순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대책과 별개로 기업들도 생산성을 향상시켜 원가상승분을 최대한 흡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생산성 개선의 여지는 많아 보인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부가가치 노동생산성은 OECD 회원국 가운데 22위로 하위권이며, 미국에 비하면 절반이고 일본에 대해서도 75% 수준에 그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생산성을 향상시키려면 먼저 노사가 화합하고 문제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물가가 오를 것을 기대하고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인상을 요구하게 되면 인플레이션은 확대되고 경기는 침체되므로 결국에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등 누구도 원치 않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근로자들은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노사가 합심하여 경쟁력 있고 부가가치 높은 상품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일부 사업장을 중심으로 무분규 및 임금동결을 선언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음은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8년 4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