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아픔

[경제시론] 2005-12-01 |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배상근

요즘 방송의 교양?시사 프로그램에선 장사를 잘하는 식당의 성공담과 잘못하는 식당의 실패담을 자주 방영하고 있다. 두 유형의 식당이 처음에는 엇비슷한 수준의 음식솜씨, 자본금이나 가게 위치에서 출발해서 같은 종류의 음식을 팔지라도 얼마 가지 않아 ‘대박집’과 ‘쪽박집’으로 나뉘는 천양지차(天壤之差)의 영업결과를 낳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두 식당의 음식 맛과 서비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설렁탕, 김치찌개, 김밥 등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식조차도 식당마다 맛이 다르고 내가 좋아하는 식당이 있게 마련이다. 하물며 음식 맛의 균질성이나 항상성을 영업의 요체로 여기는 체인점 식당에서도 각 지점마다 음식 맛은 같게 하기는 힘들다. 식당에서 밥을 먹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음식 맛의 차이를 겪어 보았을 것이고 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학교 교육에서도 차이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똑같은 수의 선생님과 학생들이 모여서 같은 수준의 교재나 시설에서 공부를 할지라도 학생들이나 학교간의 실력 차이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학급에서 공부했던 학생들 사이에서도 실력 차이가 있고, 같은 학교 내에서도 학급마다 차이가 있으며, 우리나라 학교들 사이에서도 당연히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입시를 단 한번이라도 경험해본 학생, 선생님, 교수님 모두가 학생이나 학교간의 실력이나 성적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다.

우수한 학생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입학한 특목고, 자립형 사립고, 비평준화 고등학교 등과 일반 고등학교 간의 수준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 교육부는 학교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우리나라 모든 고등학교가 동일한 수준의 실력을 갖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교육부 3不정책의 하나인 ‘고교등급제 금지’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등학교 간에 차이가 없다는 것은 마치 모든 식당에서 파는 김치찌개 맛의 차이가 없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고교등급제를 금지해야 한다는 발상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경쟁의 부정적인 의미만을 강조하며 모든 학생이나 학교가 동일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잘못된 평등주의나 형평성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고 생각된다. 만약 실력의 차이가 발생할 수 없다면 차이를 보이기 위한 경쟁은 불필요하기 때문에 경쟁이라는 발전의 원동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또한 평등이나 형평성의 개념은 ‘기회의 평등이나 형평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결과의 평등이나 형평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공부할 기회를 공평하게 주자는 것이지 열심히 공부한 결과를 차별없이 대우하자는 것이 아니다.

한편 고교등급제가 금지된 상황에서 일부 고등학교에선 좋은 대학에 출신학생들을 많이 보내기 위해 내신을 부풀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여기에 수능시험이 어려워지면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학교 교육을 불신하고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므로 사교육비가 늘어난다는 주장으로 인해 수능시험의 변별력은 실종되고 말았다.

우리나라 헌법 제31조를 보면,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나오는데, “능력에 따라”라는 문구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모든 국민이 동일한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능력의 차이가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누구나 교육을 무조건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의무교육이 아닌 고등교육에 있어, 능력에 맞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좋은 학교에서 공부할 능력이 있는 학생들이 명문대학에 들어가려면 수능성적의 차이가 적고 내신성적의 불이익으로 인해 오히려 역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행 대입제도에선 고교등급제가 금지되어 있고 변별력이 떨어지는 수능성적과 신뢰하기 어려운 내신으로 학생을 선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수한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아픔을 없애야 한다.

우리 교육제도를 개혁하기 위해선 우선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경쟁의 긍정적인 힘을 믿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세상은 차이가 있게 마련이고 차이를 벌리거나 줄이기 위해 경쟁을 하며 이런 경쟁을 통해 사회가 발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