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비정규직 사태를 바라보며

[경제시론] 2007-08-10 |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전용덕

지난 7월 1일 발효된 ‘비정규직보호법’은 이랜드그룹 노사간 갈등에서 보듯이 일부 기업에서 첨예한 노사대립을 불러왔다. 이랜드그룹의 경우에는 노조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2곳의 할인매장과 백화점에서 불법으로 점거 농성을 벌여 매장 영업을 중단시키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다. 이랜드그룹 비정규직 사태는 이제 경영계와 노동계의 대리전 양상을 띠게 되었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수는 2001년에 약 363만 5,000명이던 것이 2006년에는 약 545만 7,000명으로 증가했다. 이 숫자는 각각 경제 전체 임금근로자의 26.8%와 35.5%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경제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06년 8월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정규직 근로자의 62.8%에 불과하고, 다른 복리후생을 포함하면 그 차이는 더 커진다. 비정규직보호법은 경제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중을 줄이고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적어도 비정규직보호법의 명목상의 목적은 그렇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겠지만 그런 법이 오히려 비정규직 근로자의 이익을 해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보호법은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은 의무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조항과, “동일한 업무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 등 두 가지가 핵심내용이다.
먼저 정규직 전환이 비정규직 고용에 미칠 영향을 보기로 한다. 일정 기간이 지난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은 기업에게는 ‘규제’로 작용하게 된다. 기업이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하는 것은 인건비 부담을 줄일 뿐 아니라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법으로 정규직 전환을 의무화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당연히 늘어나고 고용의 유연성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기업이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은 수많은 경쟁자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뿐 아니라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법적 강제에 의한 정규직 전환은 정규직의 수를 어느 정도 늘릴 수는 있겠지만 비정규직의 수는 크게 감소시키거나 근로조건이 더 열악한 사내하청이나 아웃소싱 등으로 대체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노동계의 희망과 달리 비정규직보호법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을 더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는 신세계, 우리은행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비정규직을 집단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한 경우를 들어 이랜드 사태를 법 시행 초기에 생기는 일시적인 부작용으로 치부한다. 따라서 비정규직보호법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을 더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을 일축한다. 그러나 신세계 등의 경우에도 장기적으로는 전환된 정규직 근로자의 수가 줄고 아웃소싱 등의 고용방법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하면, 기업의 장기적인 고용수준과 채용형태가 단기적인 고용수준과 채용형태와 같아질 것이라는 주장은 기업의 경영현실을 너무 단순하고 안이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신세계 등의 사례를 들어 이랜드그룹의 비정규직 해결방법이 지나치게 경직되었다고 지적하는 것도 각 기업이 처한 현실을 도외시한 주장으로 설득력이 약하다.
비정규직보호법은 또 동일한 업무를 하는 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를 급여나 근무조건 등에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차별금지 조항도 기업이 자신의 인사관리 방침이나 생산성에 따라 동일한 업무에 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를 적절히 혼합해서 최상의 노무관리를 함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을 방해한다. 차별금지 조항을 엄격히 집행하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은 경우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동일한 일자리에 공존하는 경우에는 정규직을 고용한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인건비가 상승하게 될 것이고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하여 기업은 해고, 아웃소싱, 사내하청 등의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차별금지 조항 때문에 이랜드그룹 계열의 뉴코아는 계산대에서 일하던 직원 가운데 정규직 직원을 다른 업무에 배치하고 비정규직 직원은 해고하거나 용역으로 전환했다. 한 마디로, 차별금지 조항도 정규직 전환 조항과 같은 규제의 일종으로 비정규직보호법이 돕고자 하는 바로 그 비정규직 근로자의 이익을 해치게 된다.
좀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용자가 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 중에서 누구를 고용할 것인가, 고용수준을 얼마나 할 것인가 하는 등은 순전히 ‘사용자의 권리’다. 임금을 얼마나 줄 것인가,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동일하게 대우할 것인가 또는 다르게 대우할 것인가 하는 사항도 사용자의 권리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정규직 전환 의무조항과 차별금지 조항은 사용자의 그런 권리를 제한하는 ‘사회주의’ 법률이다. 그러므로 기업들이 비정규직보호법을 전후하여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해고하거나 용역전환하는 경우를 ‘편법’으로 비난하는 것은 사용자의 권리를 부인하는 ‘반자본주의적인’ 것이다.
민주노총과 이랜드 노조가 법의 테두리 내에서 시행한 이랜드그룹의 정당한 인력운용에 대하여 영업장 점거와 영업 방해 등과 같은 행위를 한 것은 엄연히 불법일 뿐 아니라 이랜드그룹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노총과 이랜드 노조는 불법행위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앞에서 논의한 내용 중의 상당 부분은 비정규직보호법 제정시에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다. 경제학은 허술한 학문이 아니라 매우 정밀한 과학이다. 비정규직과 관련한 사태는 법 제정이 그런 경제이론을 무시하거나 거스르는 경우에는 우리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비정규직 근로자를 진정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단기적으로는 백해무익한 현재의 비정규직보호법을 폐지하는 것이다. 비정규직보호법을 폐지하여 기업의 고용수준과 인력운용 방법을 기업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그러면 기업은 자신의 재무능력과 판단하에 가장 유익한 고용수준과 고용형태를 채택할 것이고, 그 결과 기업과 경제의 생산성은 극대화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발생하는 궁극적 원인을 규명하여 해결하는 것이다. 지면 관계상 길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비정규직이 발생하는 원인은 노조의 임금이 시장 임금보다 높기 때문이다. 화폐의 과다한 증가에 의한 경제위기로 대량실업이 발생하는 경우나 산업구조나 생활상이 변하여 노동수급이 바뀐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노조의 높은 임금은 기업의 인건비 상승 압박을 초래하고 그 결과 그런 인건비 상승 압박은 기업의 노동수요 감소로 인한 실업(특히, 청년실업)과 인건비가 적게 드는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이어지게 한다(이 점은 노조단체가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는 구호나 운동이 얼마나 위선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장기적으로는 노동조합법을 폐지하여 ‘비자발적 공동행위’를 제도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것이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는 길이다.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7년 8월호 [시장경제논단]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