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 친인척의 지분공개는 위헌소지 커

[경제시론]
2004-06-29 | 양금승 팀장 양금승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51개 기업 집단의 대주주(이하 “기업총수”) 친인척(친척 8촌, 인척 4촌 이내)의 지분현황을 1~3촌, 4~6촌 등 촌수별로 묶어 7월중 공개할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정위는 기업총수 친인척의 지분공개가 ‘시장개혁3개년로드맵’에 따른 것으로 대기업집단의 소유구조를 보다 상세히 일반에게 공개함으로써 투자자들의 판단을 돕고 해당기업들에게는 소유지배구조의 개선을 유도하는 것이 취지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의 이번 방침은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을 아무런 여과없이 정책에 반영함으로써 기업총수의 사생활이 과도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는 등 시행상 문제가 많아 지난해 공정위내에 설치된 ‘시장개혁TF’에서 본회를 비롯한 경제계가 강력히 반대해 왔던 사항이다.

    첫째, 기업총수 친인척의 지분현황은 현행법상 공시가 의무화된 각종자료를 활용하면 충분히 알 수 있는데, 굳이 일반국민에게까지 공개하는 것은 대기업의 소유지배구조 개선효과보다는 오히려 기업총수를 부도덕한 존재로 몰고가는 등 대기업집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 부각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해당기업에 대한 주주구성내역은 사업보고서나 감사보고서 등 현행법상 공시가 의무화된 자료에 모두 나타나 있다. 즉, 대기업집단 계열사중 상장사 및 협회등록법인, 주주수가 500인 이상인 금융감독위원회 등록법인은 사업보고서에 출자내용이 메트릭스로 공개되고 있으며(증권거래법 제186의2조 외), 사업보고서?반기보고서?분기보고서에 주식 및 주요 주주에 관한 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자산총액 70억원 이상인 주식회사는 회계법인이 작성한 감사보고서를 통해 투자지분이 공개되고 있다(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2조 외). 또한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DART)에서는 개별기업의 주식분포현황이 동일인, 특수관계인 등으로 상세하게 공시되고 있는 등 투자자들이 조금만 노력을 기울인다면 이러한 자료를 통해 대기업집단 계열사간의 출자내역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둘째, 기업총수 친인척의 지분공개는 정부가 업무상 취득한 정보에 대한 秘密 嚴守義務를 정한 공정거래법 제62조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할 수 있다. 공정위는 출자현황 등의 파악을 위해 해당 기업으로부터 매년 관련자료를 제출받게 된다는 점을 이용하여 법규상 제출의무 이외의 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명백한 秘密 嚴守義務의 위반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행정법상 정보공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과도하게 노출시켜 행정의무이행을 확보하기 위한 제재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과연 기업총수 친인척의 주식소유행위가 행정제재대상인지 여부부터 법원의 판단을 먼저 구해야 할 것이다.

    셋째, 비록 실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기업총수 친인척의 지분공개를 정부가 앞장서서 제도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과도한 서비스 제공행위이며, 개인의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 특히, 공정위가 업무상 다른 목적으로 취득한 정보를 명백한 법적 근거와 해당 기업의 동의없이 일반국민에게 공개하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 문제되며, 이미 알려진 정보라도 당사자의 동의없이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위헌소지마저 있다.

    넷째, 기업총수 친인척의 지분공개에 대한 수요가 미미하여 지분공개의 실익이 거의 없다. 지분공개로 인한 정보의 실제 활용자는 일부 전문가그룹이나 외국인투자가에 국한될 것이며, 일반투자자의 경우 의사결정의 기초자료로서 대기업집단의 소유구조에 대한 정보수요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시민단체의 무리한 요구를 충족시키고, 학자들의 연구편의를 돕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무리하게 기업총수 친인척의 지분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섯째, 외국에서 구체적으로 기업총수 친인척의 지분을 공개하는 사례도 없다는 점을 참작해야 한다. 다만, 일본 공정취인위원회는 6개 기업집단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표하고 있으나, 이 경우에도 개별 기업집단이나 계열사의 수치가 아닌 전체 내용으로 기술되고 있다.

    여섯째, 설령 기업총수 친인척의 지분공개를 강행하더라도 동일한 통계수치에 대해 분석기관의 시각에 따라 자의적인 해석 가능성이 남아 있으며, 기업총수의 창의적인 기업활동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대기업에 대해 비판적인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지분율이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문제를 제기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대기업집단 전체의 지분구조를 상세하게 공시하게 되면, 외국자본의 경영간섭이나 적대적 M&A가 빈발할 가능성도 높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기업총수 친인척의 지분공개는 관련통계가 이미 사업보고서 등에 공시되어 있으므로 굳이 정부가 나서서 상세한 자료를 투자자가 아닌 일반국민에게까지 공개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특히, 지분공개는 공정거래법의 취지와 무관하며, 필요하다면 증권거래법 등 공시관련법규를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