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강제조사권 도입해야 하는가?

[경제시론] 2005-05-30 | 경희대학교 안재욱: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조사관들이 삼성토탈의 부당 공동행위 혐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삼성토탈 직원들이 조사에 필요한 자료를 빼돌려 파기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를 빌미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카르텔 조사를 위해 기업을 압수 수색할 수 있는 강제조사권을 도입하려고 추진하고 있다.
공정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들이 공정위의 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한 사례는 1998년 11월 삼성자동차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7년 동안 6건에 불과하다. 연평균 한 건도 되지 않는다. 예외적이라고 볼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 ‘사법경찰권’이라는 강력한 권한을 갖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현재 제도만으로도 조직적이고 중대한 방해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혐의가 충분한 경우 독립적이고 수사전문기관인 검찰에 고발하여 수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실 우리나라 공정위처럼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반독점기구도 세계적으로 드물다. 현재 공정위는 계좌추적권을 갖고 있으며, 현장조사권, 출석요구권, 자료영치권, 현장출입권 등 강제조사권에 준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여기에 강제조사권까지 보유하게 되면 공정위는 입법권 및 행정권, 그리고 사법권까지 보유하게 되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된다. 권력남용이 우려되는 형국이다.
공정위가 강제조사권을 갖는다면 조사권 남용에 따른 기업영업비밀이 누출될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가 단속 대상으로 삼는 경제적 사건은 형사나 민사사건과는 달리 범죄사실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따라서 공정위는 최대한 광범위한 자료에 대해 압수수색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기업의 중요한 영업비밀 누출 가능성이 많다.
카르텔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독점적이고 반사회적인 것은 아니다. 카르텔을 결성함에 있어서 강제나 협박 등의 행위가 없이 참가자가 자발적으로 카르텔에 참여하는 자발적 카르텔은 생산을 제한하는 구조가 아니라 효율적인 생산구조 또는 가치창조적인 조직이다. 그러므로 자발적 카르텔은 처벌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2000년 7월 전주권역에 있는 레미콘 회사 13개사가 레미콘을 공동으로 생산하여 판매하기로 결정한 것은 대표적인 자발적 카르텔이다. 건설업계의 불황으로 레미콘 수요가 대폭 감소하자 치열한 레미콘 판매 경쟁이 일어났고 가격이 매우 낮아졌다. 공동생산과 판매는 시설 대비 생산량을 줄여 이윤을 낼 수 있는 가격을 유지하고 마케팅 비용을 포함한 각종 비용을 절약하여 수요 감소로 인한 가격하락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레미콘 생산을 줄임으로써 노동력, 시멘트, 모래, 전기, 기름 등 각종 생산요소가 레미콘 생산에서 다른 부문으로 이동하였다. 그에 따라 경제 전체적으로 생산의 효율성이 증가하게 되었다.
물론 타인의 영업을 방해하거나 제한하는 비자발적 카르텔은 규제되고 처벌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카르텔에서 담합에 대한 실질적인 증거물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담합의 적발은 압수수색에 의해 포착되기보다는 이윤배분에 대한 불만을 품은 카르텔 내부의 밀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최근 명시적인 담합보다는 암묵적인 담합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강제조사권은 별로 쓸모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아무 실효성이 없는 강제조사권을 도입하기 보다는 경쟁정책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내부밀고자를 보호하고 그에 대한 보상강화에 중점을 두는 것이 보다 옳다.
지금까지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경쟁촉진보다는 경제력 집중 억제정책에 치중해 왔다. 지난해 공정거래법 개정 시 출자총액제한유지, 금융회사 의결권한도 축소, 계좌추적권 재도입 등 기업의 활동을 제한하는 규제들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제조사권까지 도입될 경우 기업 활동이 더욱 위축되어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다. 따라서 강제조사권을 도입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력 집중을 억제한다는 미명하에 가해지고 있는 각종 기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