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강화 동향과 문제점

[경제시론] 2013-12-24 | 전경련 경제본부 기업정책팀장 추광호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와 관련한 규정들이 계속해서 개정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자본시장 및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이라 함)이 개정되면서, 이른바 ‘10% rule’1)을 개정하여,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에는 1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경우에도 분기별로만 공시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8월에는 시행령이 개정되었는데, 이에 의하면 국민연금 등 연기금을 포함한 이른바 공익적 성격의 전문투자자는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경우에도 5일 이내에 즉시 공시하지 않고 분기별로 공시하면 된다. 다만, 특정증권 등의 보유를 통해 해당 법인의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목적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국민연금의결권 행사지침의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특히 이사와 사외이사의 선임과 관련한 자격요건을 보다 엄격하게 제한하고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국민연금이 반대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다.

기존에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와 관련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최근 잇따라 관련 규정들이 개정되면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에 대한 우려는 더욱 증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연금의 10% rule 제외 재검토 필요

특정 주주가 기업에 대한 지분을 10% 이상 보유할 경우 즉시 공시토록 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내부자 거래의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국가 등이 주체가 되는 공익적 성격의 투자자의 경우 수익보다는 공익을 우선시하므로, 이익만을 좇아 내부자 거래를 할 가능성이 적다는 점을 근거로 분기별로 공시할 수 있는 예외규정을 도입하였다.

그런데, 이 같은 측면에서 보면 국민연금은 다른 공익적 성격의 투자자들과는 그 성격을 달리 하므로 다른 측면에서 검토가 되어야 한다. 즉 기본적으로 국민연금 운용의 가장 큰 목적은 공익이라기보다는 수익률 제고이며, 이 같은 측면에서 부실기업 정리나 신사업 투자 등 정책 목적이 일정부분 강조되는 공익기금 등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이유가 공익 목적이 아니라 수익 극대화에 있다면, 동일한 목적을 가진 국내펀드나 해외연기금 등과의 형평성 문제도 야기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수익률 제고를 목표로 자본시장에 참여하고 있는데, 국민연금에만 특혜를 주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정안에서는 10% 공시의무의 적용제외 요건으로 ‘해당 법인의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목적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그간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이사의 선임 등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목적으로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던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하여 10% 공시의무 적용제외 대상 범위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실제로 10% 공시의무 적용제외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국민연금이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회사는 30여개 사를 넘어서고 있다).

의결권 행사지침 개정도 경영간섭 우려

최근 복지부는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지침 개정안을 마련하여 의견을 수렴 중에 있다. 하지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지침 개정안 역시 기업경영에 대한 간섭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되어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개정안에서는 이사 선임에 반대할 수 있는 결격 사유로 ‘지배주주의 명백한 주주가치 침해에 대한 감시의무를 소홀히 한 자, 또는 배임·횡령에 따른 직접적 수혜를 공동으로 향유한 자’를 추가하고 있는데,2) 이 경우 그 범위와 판단기준이 포괄적이고 모호하여, 국민연금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의결권 행사가 남용될 우려가 있다. 특히 주주가치 침해에 대한 법령상 귀책사유가 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침해행위가 문제된 시점에 재임 중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이사 선임을 반대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기업경영에 꼭 필요하고 유능한 경영자를 이사로 선임하지 못하는 불합리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일본 기업연금연합회의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이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의 관점에서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자의적인 행사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있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또한 행사지침 개정안은 ‘투자위원회’에도 의결권 행사방향의 사전 공개 결정권한을 주도록 하고 있는데, 이 역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의 금융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감안하면, 의결권 행사방향의 사전 공시는 다른 기관투자자나 운용사, 나아가 일반 투자자들의 의사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로 인해 기존에는 외부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결정이 있는 경우에 사전 공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투자위원회에까지 이 같은 결정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국민연금이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보다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일정부분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외부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결정한 경우에 한해 사전에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기존에는 사외이사의 선임과 관련하여 당해 회사에 사외이사로 10년 이상 재직한 경우에만 반대할 수 있었지만, 개정안은 계열사까지 포함하여 10년 이상 사외이사로 재직한 경우에도 사외이사 선임을 반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미 상법이나 자본시장법 등에서 상당히 엄격한 자격요건을 규정하고 있기에 추가적인 제한은 불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주요 해외 연기금은 단순히 재직 연수만으로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하고 있지는 않다.

신중해야 할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강화

국민연금의 주식시장 투자 목적은 무엇보다 기업가치의 제고를 통한 수익률 극대화에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정부나 정치권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최근 공기업의 부실사태에서 보듯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기업경영의 효율성이나 기업가치 제고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가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나아가 향후 국민연금의 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경우에 보유 주식의 매도로 인한 주식시장의 교란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주식시장 투자비중에 대한 정교한 장기적 전략 마련이 중요하다.

(ckh@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3년 12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