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규제개혁 성과와 시사점

[경제시론] 2007-03-10 | 전경련 기업정책팀장 양세영

일본의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시장 예상치를 대폭 상회한 4.8%(연율)를 기록했다. 이는 경쟁국인 미국(3.5%)과 EU(3.3%)의 4분기 경제성장률을 훨씬 앞서는 것이다. 4분기 경제성장률이 급등한 것은 기업의 투자 호조와 민간소비 개선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일본경제는 과거 버블경기(51개월)나 이자나기경기(57개월)를 뛰어 넘어 전후 최장기간(60개월 연속)의 경기확장 국면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자동차, 전자 등 전통적인 대표 업종에서 도요타와 마쯔시다 등 기업들의 실적호조가 지속되고 있으며, 투자도 전자업계의 경우 작년도 증가율이 전년대비 18.7%에 달하는 등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의 결과 신설기업의 증가와 청년 고용의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10년 불황’에 시달렸던 일본경제가 이처럼 회생하고,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강화된 배경으로는 그동안 기업과 금융기관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과 엔화약세로 인한 수출경쟁력 강화를 들 수 있으며, 정책적으로는 고이즈미, 아베 정권으로 이어지며 계속된 공공부문의 개혁과 기업규제의 획기적 완화를 꼽을 수 있겠다. 특히,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을 위해 발 벗고 나서 핵심규제를 과감히 개혁한 사례는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제활력 회복이 시급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법 개정 통해 기업 자율성 확대와 경영권 보호 추진

먼저, 일본 정부는 기업활동의 근간이 되는 상법을 2000년대 들어 대대적으로 개편하여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촉진하였다. 버블 해소로 위축된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기업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하며, 기업·주주 등 당사자의 자치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지배구조의 유연성 제고, 정관자치의 확대, 합병 등 구조조정과 창업의 신속, 간이화, 자금조달 수단의 다양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편이 이루어졌다.
한편, 개정과정에서 경제계의 의견이 대폭 반영된 입법이 이루어짐으로써 문자 그대로 수요자 중심의 개정을 통해 경제현실에 대한 정합성이 높아졌다. 주요 법 개정사항으로는 주식교환·이전 제도의 도입(1999년), 회사분할 제도의 도입(2000년), 자기주식의 취득·보유 규제 완화, 單元株 제도의 도입, 법정준비금 제도의 완화, 종류주식의 다양화, 신주예약권 제도의 도입, 주주총회의 IT화, 이사·감사의 책임경감 제도 도입, 주주대표소송 제도의 합리화(2001), 주주총회 운영의 탄력화, 지배구조의 선택제 확대(2002년), 자기주식취득방법의 완화(2003년), 전자공고 제도, 주권불발행 제도와 포이즌 필(poison pill)의 도입(2004년) 등이다. 이러한 지속적인 개정으로 기업이 효율적 기관구조를 위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지배구조의 조합이 40여 개로 다양화되었다. 또한 자금조달 부문에서는 종류주식의 도입으로 보다 다양한 수단이 확보됨은 물론, 결과적으로는 적대적 M&A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우리나라 상법 개정 과정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이중대표소송 제도의 경우, 일부 논의가 있었지만 자회사 이사의 문제는 기존 대표소송을 통해 모회사 이사에게 직접 소송을 걸어도 충분히 구제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도입하지 않기로 하였다. 자회사 이사의 위법행위에 대해 모회사의 이사가 알고 있었을 경우 이는 위법행위에 해당하며, 이를 몰랐다 하더라도 이사의 선관주의 의무 위반이므로 대표소송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이중대표소송제도는 모회사 주주와 자회사 주주간의 이익상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며, 기업들이 소송 제기를 피하여 자회사 방식의 사업조직을 주저하게 됨으로써 자유로운 조직개편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역행한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일본의 규제완화 차원의 상법 개정은 기업활동을 촉진하고, 투자를 활성화하여 일본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기업집단 규제 완화와 수도권 규제 폐지로 글로벌 경쟁력 강화

일본은 2차대전 이후 지주회사의 설립금지, 대규모회사의 주식보유 총액제한제도를 통해 대기업집단을 규제해 왔으나, 1997년 경제활성화를 위해 사업지배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타회사를 지배할 목적의 순수지주회사의 설립 및 전환을 자유화하였다. 또한, 2002년에는 독점금지법 개정을 통해 사전규제인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여 사실상 대기업집단에 대한 핵심규제를 모두 혁파하였다. 물론, 출총제 폐지 후 과도한 사업지배력 회사의 설립 및 전환을 금지하는 제도를 신설하였으나 현실적으로 규제 대상기업이 존재하지 않는 상징적인 규제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상호출자는 25%까지 가능하며, 도요타 등 주요 그룹에서 볼 수 있는 순환출자 등 출자구조에 대해서도 논란이 없는 실정이다.
한편, 수도권 규제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수도권의 핵심역량 집중이 필수된다는 관점에서 철폐에 가까운 개혁이 이루어졌다. 80년대 이후부터 수도권 공업활성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동경권의 기능강화를 위해 ‘공장등 설립허가제’ 폐지(2002), ‘공장등 배치법’ 폐지(2006) 등을 추진하여 수도권내 공장, 대학의 신·증설을 허용하였다.
또한, 최근에는 해외로 나갔던 일본 기업의 국내 U-턴을 촉진하기 위해 경제산업성 주도로 ‘공장입지법’ 개정작업이 착수되었는데, 공장신설 때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기업들에 부담을 주었던 조항을 대폭 손질함으로써 해외이전 일본 기업들을 다시 국내로 유치하려는 것이다. 이 외에도 후생노동성은 최근 기업이 필요에 따라 임금체계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도록 관련 노동법을 개정하기로 하였으며, 서비스업의 성장 촉진을 위해 ‘산업활력재생법’의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또한, 감가상각 제도를 고쳐 올해 연말까지 5,000억 엔 규모의 기업 세금을 삭감해 주기로 하는 등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과 같은 핵심규제 개혁으로 기업활력 제고 시급

이러한 일본의 지속적인 규제 완화는 거시경제의 회생뿐 아니라 보수적으로 소문난 일본식 경영의 체질을 바꿔 글로벌 경영과 스피드 경영을 강화하고 기업가정신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그동안 정부가 여러 차례 투자 활성화 대책, 규제 완화 방안을 내놓았지만 실제 투자증가와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출자총액제한 제도나 수도권 규제 등 기업의 발목을 잡는 핵심규제를 풀어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경제의 부활은 우리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포커스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좋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핵심규제 개혁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국가부채 증가로 재정의 탄력성이 떨어진 상황에서 규제개혁은 가장 싼 비용으로 경제회생을 가능하게 하고, 민간부문의 창의를 제고한다는 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 완화를 위해서는 우선, 정부의 상법 개정이 당초 취지대로 국내기업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중대표소송제도, 회사기회의 유용금지 등 세계적으로 입법례도 없고 기업 규제적 성격이 강한 내용들은 철회해야 하고, 이사제도 등 지배구조관련 제도들도 기업의 정관자치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 공정거래법 역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출총제 등 사전규제는 재검토해야 하며, 규제 위주의 지주회사 제도도 기업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도권 규제는 일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좁은 국내적 시각을 탈피하여 경쟁국의 수도권과의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과감한 완화가 요청된다. 이를 통해 투자와 고용 등 국민 경제적 효과가 큰 기업들의 수도권내 공장 증설이 조속히 이루어져 경제가 활력을 찾는 모멘텀이 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ysy@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7년 3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