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시장적 상법개정의 과제

[경제시론] 2007-05-10 | 전경련 기업정책팀장 양세영

법무부는 지난 3월 상법개정 입법예고안을 일부 수정하여 법제처 심의에 넘겼으며, 관계부처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정부 최종안을 확정한 후 6월 임시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그동안 상법개정 작업은 2005년 7월 상법개정 특별위원회의 구성과 논의, 2006년 6월 개정시안 발표, 공청회, 쟁점 조정위원회 등의 과정을 거쳤으며, 300개가 넘는 조문이 신설 또는 개정되는 등 전면적인 개편이 이루어졌다. 기업활동의 근간이 되는 틀을 손질한다는 점에서 향후 입법과정과 내용은 경제계의 커다란 관심사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수정된 정부안은 입법예고안에서 논란이 되었던 이중대표소송제를 제외하였고, 회사기회의 유용금지도 당초 안을 수정하여 이사의 자기거래 유형으로 축소 조정하였다. 반면, 종류주식에 있어서는 여전히 신주예약권이나 차등의결권 주식의 발행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당초 도입되기로 하였던 임원 선해임조건부 주식, 거부권부 주식 등은 제외되었다.
개정안은 전체적으로 볼 때 이사의 책임완화, 사채제도의 개선 및 최저자본금 폐지 등 일부 개선된 부문도 있지만, 새로운 규제적 요소가 도입되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개정작업의 취지와는 거리가 있고, 특히 기업들이 21C 글로벌 환경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도 미흡한 점이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지배구조 부문(Corporate Governance)은 불필요한 규제적 제도가 신설 또는 강화되었고, 자본조달 부문(Corporate Finance) 역시 기대했던 주식의 다양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배구조 부문에서 논란이 되는 제도로는 회사기회의 유용금지, 집행임원제도, 이사의 자기거래 승인대상 확대, 주총의 IT화 등이라 할 수 있다. 회사기회의 유용금지는 당초 상법개정특별위원회에서조차 논의되지 않았던 사안으로 입법예고안은 ‘이사가 장래 또는 현재에 회사의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업기회를 이용해 자기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익을 취득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었다. 그러나 현재와 장래의 사업기회라는 개념자체가 모호할 뿐 아니라, 회사의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업기회라는 것 역시 어떤 행위가 규제대상이 될 것인지 예측이 불가능하므로,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이 광범위하게 제기될 수 있어 남소의 소지가 높고 이사의 책임부담 증가로 인한 경영위축이 우려된다는 반대 의견에 따라 일부 조문을 수정하였다. 그러나 비록 대상을 축소 조정하였다 하더라도 여전히 개념이나 판단기준이 애매하여 어디까지 사업기회로 구분할 것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비록 회사기회의 유용이 발생할 경우라도 현행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이사의 겸업금지 의무’, ‘이사의 자기거래 승인’, ‘공정거래법상 내부거래의 이사회 승인 및 공시’ 등을 통해 이사의 직간접적 사익추구 행위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과잉규제의 성격이 크다. 또한, 수정안은 이사가 회사를 위하여 제3자와 거래하는 행위를 자기거래로 보도록 함으로써 사내 벤처 육성이나 리스크 관리 차원의 자회사 분할 등으로 형성된 제3자와의 거래를 모두 이사회의 승인을 받게 만들어 전략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집행임원제도’는 이사회는 감독기능만 수행하고, 이사회가 선임한 분야별 집행임원이 경영 전반에 대한 업무집행 권한을 갖고 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로서 비록 임의규정으로 도입되었으나 과거 감사위원회 등이 상법에 임의규정으로 도입된 이후 증권거래법 등 특별법에서 강제화된 선례를 볼 때 강제규범화될 가능성이 높아 기업의 경영구조에 대한 자율적 선택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 소유와 경영, 업무집행과 감독을 분리하느냐 통합하느냐는 선진국의 경우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사안이다. 또한, 일원적 이사회시스템을 목표로 도입한 사외이사제도, 감사위원회제도와 이사회 권한을 업무집행과 감독으로 규정한 현행 상법의 입법취지와도 배치되며, 집행임원을 이사회가 선임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외이사의 권한이 강화되는 반면, 상대적으로 주주권은 약화됨으로써 기존 상법의 주주권리 강화방향과도 어긋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기업의 지배구조는 최적의 형태 선택을 기업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자율적이고 선택가능한 사항을 상법에 근거를 둠으로써 강제화를 둘러싼 논쟁의 소지를 남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사의 자기거래 승인대상’ 범위를 현행 이사에서 이사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및 그들의 개인회사 등으로 확대하는 것은 규제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하여 일상거래의 신속성을 저해하고 비용을 상승시키는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소규모 거래가 빈번한 중소기업의 경우 불편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선진국은 현재의 상법과 같이 이사와의 거래만을 승인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입취지인 거래의 투명성 제고는 현재의 공정거래법과 증권거래법을 통한 내부거래와 이해관계자와의 거래 규제를 통해서도 충분히 달성될 수 있다. 주주총회의 IT화는 정보화 시대에 기업의 공고, 주주제안, 의결권 행사 등을 전자적 방법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정보화 시대에 경영의 효율성을 위해 바람직한 면이 있으나 일부 조항은 관련 인프라를 감안하지 않은 채 지나치게 앞서감으로써 시행상의 부작용이 우려된다. 현행법이 주주총회 목적사항의 제안을 서면으로만 가능하게 규정한 것은 그 증거를 명확히 남기려는 의도 외에도 일정한 형식을 요구함으로써 무분별한 제안을 방지하고 원활한 주주총회의 진행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전자문서로도 가능하게 하면 전자문서의 이용 편리성으로 인해 목적사항 제안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예상된다.
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경영권 방어조항이 대폭 폐지되어 외국인 투기자본에 의한 적대적 M&A의 위협이 현재화되고 있으므로 다양한 주식종류의 도입을 통해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되기를 기대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적대적 M&A 방어를 위해 주요국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차등(복수)의결권, 신주예약권주는 도입되지 않았고, 그나마 입법예고안에 담겨 있었던 임원 선해임조건부 주식, 거부권부 주식마저 제외되었다. 주식발행에 있어 영국과 미국은 회사법상 포괄적 규정만을 두고 기업자치를 최대한 보장하며, 일본도 발행 가능한 대부분의 주식을 회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상장규정에 두어야할 규제를 상법에 규정하는 소극적 입법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한 지나치게 1주1의결권원칙이나 외자유치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다양한 자금조달 수단도 되면서 필요에 따라서는 외국 투기자본에 의한 적대적 M&A 방어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종류주식 발행을 제한하고 있다.

선택가능한 모델법으로 거듭나기를 기대

향후 상법개정은 6월 이후 국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모처럼 대폭적인 개정작업이 이루어지는 만큼 상법이 더 이상 규제 중심의 체계에서 벗어나 21세기 글로벌 경쟁환경에서 우리 기업들이 선진국 기업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선택가능한 모델법’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점에서 회사기회의 유용금지, 이사의 자기거래 승인대상 확대 등과 같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는 도입을 배제해야 하며, 집행임원제도 역시 상법에 규정하지 않더라도 기존 제도의 보완과 정관 개정을 통해 시행할 수 있으므로 재검토가 요청된다.
아울러 자금조달 수단의 다양화 차원에서 논의되었던 수종의 종류주식은 제한 없이 도입할 필요가 있다. 최근 영국, 독일, 일본 등은 회사법 개정을 통해 지배구조의 유연화와 자금조달 수단의 다양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이러한 방향이 상법개정의 국제적 트렌드라 할 수 있다. 특히, 이웃 일본이 친시장적인 상법개정을 통해 기업의 자율적 선택의 폭을 넓힘으로써 잃어버린 10년을 탈피하여 다시 장기 성장국면으로 전환하는 데 원동력을 삼은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ysy@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7년 5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