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외교 강화 필요성과 기업의 대응

[경제시론] 2008-06-18 | 주카자흐스탄 한국대사 김일수

얼마전 한승수 총리가 중앙아시아 4개국 순방길에 나서 5월 13일부터 15일간 카자흐스탄을 공식 방문했다. 이번 카자흐스탄 방문에서는 여러 성과가 있었지만 잠빌 유전 광구 탐사를 위한 본 계약이 4년여의 지루했던 협상에 종지부를 찍었다. 잠빌 해상 유전은 예상 원유 매장량이 10억~16억 배럴에 이르는 큰 유전이다.
잠빌 광구 탐사 본 계약의 서명은 여러 의미를 갖는다. 우선 카자흐스탄은 금년 말까지 채굴산업에 대한 세율을 높이는 입법을 예고하면서 새로운 세법이 채택되기 전까지는 카자흐스탄 정부가 주관하는 새로운 원유 광구 계약은 유예한다는 방침을 연초에 발표한 바 있었다. 더욱이 카자흐스탄 정부는 국영 석유회사인 카즈무나이가즈(KMG)의 원유 광구 소유지분을 늘려간다는 정책 하에 이미 외국과 합작하여 추진하기로 했던 광구의 탐사권을 회수해 가는 동향도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카스피 해상 Nursultan 광구의 주 운영권을 기대했던 Royal Dutch Shell이 KMG에 운영권을 넘기는 일까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석유공사와 KMG간 잠빌 광구의 탐사 관련 본 계약이 체결된 것은 카자흐스탄 정부의 예외적인 조치이며, 우리는 카스피 해상 광구 관련 계약으로는 지난 2년간 처음으로 카자흐스탄 정부가 외국과 체결한 계약의 당사자가 되는 기록을 남긴 셈이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여느 산유국과 마찬가지로 초고유가 시대를 맞아 자원에 대한 국가의 통제권을 여러 입법을 통해 강화해 나가면서 외국 투자가들에게 새로운 조건을 부과하며 자원분야의 진입장벽을 높이고 있다.
지난해 카스피 해상 최대 광구인 카샤간 유전의 생산이 지연되는 것을 이유로 카자흐스탄 정부는 이탈리아의 ENI를 주 운영자로 하는 카샤간 컨소시엄에 계약의 재협상을 강행했고 궁극적으로는 KMG의 카샤간 유전 지분 확대, 생산 지연에 따른 범칙금 부과 등의 양보를 얻어냈다. 카샤간 컨소시엄에는 ENI는 물론, Exxon Mobil, Royal Dutch Shell, Total, Conoco Phillips 등 기라성 같은 원유 메이저들이 포진해 있고,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 영국의 York공 같은 인물들이 카자흐스탄을 다녀가면서 협상과정에서 국제 컨소시엄 측에 정치적 무게를 더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 총리가 카자흐스탄 방문시 전달한 메시지는, 한국이 에너지 자원의 거의 100%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로서 카자흐스탄과의 자원협력에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한국은 카자흐스탄과의 협력을 단순한 자원의 공급자와 수요자로서의 관계를 뛰어넘어 전방위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며, 카자흐스탄이 추진하는 산업 다변화에 다각적인 협력을 할 수 있는 이상적 파트너라는 점이었다.
실제로 우리가 카자흐스탄에 전달한 청사진은 한국이 발전소, 도로, 환경 시설 등 인프라 건설, IT, 건축 기자재, 식품 가공 등 카자흐스탄이 발전시키고자 하는 모든 산업 부문에 걸쳐 기술과 경험을 갖추고 있고 이를 구체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action plan을 작성하여 입체적 협력을 추진하자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마침 국민은행을 비롯한 우리 금융권이 카자흐스탄 금융부문이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융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점에 때맞추어 진출한 것도 카자흐스탄 정부로 하여금 한국과의 협력에 기대를 갖게 하는 데 한 몫을 했다. 한국이 우수한 인적자원에만 의지하여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이루는 과정에서 쌓아온 남다른 개발경험도 카자흐스탄 정부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한 요인 중의 하나였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총리 방문 전인 3월, 카자흐스탄 정부 경제부처, 금융기관들과 금융관계 전략 세미나를 개최하여 마침 금융경색 문제와 이로 인한 건설경기 냉각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던 카자흐스탄 정부에게 시의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였고, 양국 정부는 이미 이러한 유형의 정책적 경험공유 사업을 계속해 나가기로 한 바 있다. 말하자면 카자흐스탄은 한국과의 산업협력 잠재력, 그리고 우리의 경제개발 경험 공유 등 비자원분야 발전에서 한국과의 협력에 기대를 걸고 우리에게 불리하지 않은 조건으로 잠빌 광구의 탐사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원유가가 이제 배럴당 100달러를 훨씬 넘어 혹자는 불원간 배럴당 200달러 시대의 도래를 예측하고 있는 이즈음 우리의 원유 자급률을 현재의 4%대에서 18%대로 올리려는 정부의 정책에 이견을 갖는 이는 없다. 문제는 우리의 자원확보를 위한 노력이 어떤 방법으로 추진되어야 하는가에 있다.
현재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해외 유전이나 가스전은 136개이고 이 중 36개가 생산광구이다. 석유공사는 이미 16개의 광구에 대해서는 단독 운영권자로서, 6개 광구에서는 공동 운영권자로서 탐사·개발·생산 부문에서 국제적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민간기업 중에서는 대우인터내셔널이 광구 운영경험을 갖고 있다. 석유공사의 자산을 5배 증액한다는 정부의 방침이 실현되면 탐사광구뿐 아니라 중·대형 규모 생산광구의 매입시장에도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의 발로 뛰는 기업가 정신도 자원확보 노력에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소위 자원전쟁의 시대를 맞아 극심해지는 경쟁 속에 우리 경제의 생명선인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일은 정부와 민간의 긴밀한 협력 속에 이루어져야 하며, 그럼으로써 그 빛을 더욱 발할 것이다.
이번 잠빌 광구 탐사 본 계약 체결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자원보유국의 입김이 세지는 고유가 시대의 해외자원 확보 노력은 유전의 상업적 가액에 대한 협상에 더하여 자원보유국이 필요로 하는 협력을 우리의 강점을 살려 맞춤형으로 제공하여 줄 때 좋은 성과를 낳을 수 있다. 카자흐스탄의 예에서 보듯이 한국의 강점은 대부분의 산유국이 필요로 하는 산업 다변화에 우리의 기술과 경험, 그리고 이제 해외로의 진출을 보다 심각하게 모색하는 우리의 금융능력을 결합하여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소위 package deal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러한 접근방법은 대상국의 사정에 따라 조금씩 내용을 달리한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대부분의 에너지 광구, 특히 육상 유전은 사유화가 많이 진전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카스피 해상 광구에 대해서만 우리 기업의 산업 다변화 참여를 전제로 하는 일종의 package deal이 적용된다. 또한 package deal이라고 하여 한 쪽의 손해를 자원부문의 이익으로 보전하는 식의 package는 곤란하다. 사업주체가 거의 민간기업인 우리의 경우, 비자원 분야 진출업체와 자원분야 진출업체가 서로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자원·비자원 분야에 동시 진출하는 경우라도 양 부문에서 각기 경제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진출기업의 개별적인 상담 노력과 더불어 정부가 우리 기업의 진출을 자원분야의 진출과 직·간접적으로 package화하여 자원보유국에 win-win 협력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만의 특유한 경제발전 경험공유와 우리의 개발협력 원조는 자원보유국의 경제발전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한편, 간접적으로 우리의 자원확보 노력에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또 다른 수단이다. 다만, 개발협력 원조의 국제적 추세는 공여국의 경제적 이익과 연계되지 않은 소위 untied aid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유념하여 시행해야 할 필요도 있다.
정부가 에너지 외교에 중심적 역할을 하는 각 해외공관에 현지 에너지 전문가를 채용하여 자원확보 노력에 활용하도록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인맥을 확보하여 에너지, 유전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것도 에너지 외교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석유공사 등 에너지 개발에 주역을 맡는 기관들이나 기업들이 정보 수집과 교환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보다 많이 확보하여 각종 국제 에너지 관계 모임에 적극 참여하고 정보수집을 강화하는 것도 실질적인 에너지 외교 추진에 중요한 몫을 할 것이다.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8년 6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