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만 거꾸로 가려 하는가

[경제시론] 2006-08-10 |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이동응

최근 노동운동가들은 기업노조를 산별노조로 전환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회사 담장 밖에서 담장 안의 근로자들을 향해 산별노조에 합세해야만 투쟁력을 높여서 근로자의 권익을 쟁취할 수 있다고 소리친다. 이러한 지속적인 회유의 결과, 지난 6월말 현대, 기아자동차를 비롯한 GM대우자동차, STX조선, 로템 등 13개사의 노조는 조합원 투표를 통해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결정하였다. 지금의 운동가들은 “산별교섭을 통해 같은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간의 근로조건 격차를 줄일 수 있다”거나 “산별단위에서 노사간 교섭하게 되면 기업별 교섭으로 인한 대립과 갈등을 청산할 수 있다”는 등의 그럴 듯한 이상을 제시하지만 실제 이루어지는 산별교섭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왜 산별노조로 가려 하나

최근 노동운동이 국민들의 따가운 질책을 받으면서 사업장마다 투쟁의 열기가 식어가고 동력이 점점 떨어지면서, 노동운동가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산별노조 건설을 통해 세력을 확대하겠다는 생각이다.
일단 산별노조로 조직이 확대되면 전국 단위의 총파업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정부와 사용자에 대해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큰 영향력을 배경으로 노동운동가들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된다고 믿는 것 같다.
또한 산별노조가 되면 일정한 직업이 없는, 아니 직업적인 전문 노동운동가들을 위한 자리나 이권이 생긴다는 계산도 작용하고 있다. 이렇듯 산별노조는 노동운동가들에게 크나큰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산별노조의 폐해

그러나 우리나라의 산별노조는 노사관계 불안의 온상이다. 노동부 통계를 보면, 산별교섭이 확산된 2004년의 경우에는 보건의료노조 소속 사업장에서 66건, 버스노조 관련 사업장에서 37건, 택시노조 관련 사업장에서 90건, 금속노조 사업장에서 76건 등 전체 분규의 60% 이상이 산별노조 소속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2005년에는 통계상으로는 총 노사분규 발생건수의 40% 이상이 산별노조 소속 사업장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었는데, 각 산별 파업을 하나의 건수로 통계방식을 바꾸었기 때문에 산별 분규건수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산별로 인한 분규가 더 늘어났다.
이렇듯 산별노조는 그간 기업별 노사관계가 안정화되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 역행하여 투쟁을 일삼고 있어, 노사관계를 불안하게 한다. 기업간 격차가 엄연하게 존재하는 데도 근로조건의 통일적 적용을 요구하는 노조와 이를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기업들간에 노사분규가 끊이지 않는다.
만일 산별교섭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기업단위의 파업도 ‘산별 총파업’으로 확대되고 이로 인해 국가경제와 국민의 생활은 엄청난 피해를 받게 된다. 병원노조의 산별 총파업으로 환자들이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하는 등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았다.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은 연례행사와 같이 반복되는 산별 총파업으로 매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파업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노조조차도 하는 수 없이 참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앙단위 교섭, 지역단위 교섭, 기업단위 교섭 등 삼중의 교섭에 세 번 모두 파업을 겪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몸체는 산별노조로 전환했으나 마음은 기존의 기업별 노조로서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고 있어, 교섭구조가 복잡하게 되고 비경제적으로 된다.
우리나라의 산별교섭은 기업별 교섭에 산별교섭을 하나 더 포갠 기형적 구조로 되어 있다. 교섭기간도 두세 배 길어지고 그만큼 노사간 대립과 갈등이 증폭된다.
또한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으로 인해 산업현장이 정치투쟁의 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대다수 산별노조에서는 ‘대정부 요구’, ‘입법관련 요구’라는 명목으로 산업의 사용자들이 결정할 수 없는 사항을 요구사항으로 삼는다. 일단 산별노조로는 전국 단위의 총파업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정부와 사용자에 대해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를 배경으로 노동운동가들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발전하려고 한다.
그 결과 FTA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을 기업의 노조도 산별노조의 反FTA 지침에 따라 맹목적으로 투쟁에 동참하는 우스운 상황도 발생하게 된다.

선진국들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산업별 교섭에서 기업별 교섭으로 내여오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왜 우리의 일부 직업적 노동운동가들은 거꾸로 가려 하는 것일까? 종일산업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통일시킨다는 명분 아래 기업 밖에 있는 보신을 도모하는 전략에 기업내 근로자들이 현혹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선진국의 산별교섭은 어떠한 모습인가

노동계에서는 산별교섭이 기업별 교섭에 비해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교섭비용도 절약되는 경제적인 교섭방식이라고 주장하면서 유럽의 예를 많이 들고 있다. 그러나 유럽식 산별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산별교섭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유럽에서는 산별노조라 하더라도 사업장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다.
교섭방식도 우리처럼 2중·3중 교섭이 아니라 중앙단위에서 단 한 차례만 교섭하고, 개별기업 문제는 파업 없이 노사협의회로 마무리된다. 그나마 이러한 산별교섭조차도 점차 기업별 교섭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소위 교섭의 하향분산(Decentralization) 현상이다.
오랜 산별교섭의 전통을 가졌던 독일에서도 산별협약을 체결하되, 그 산별협약조차도 개별기업의 사정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있으며, 기업별 협약만을 체결하는 기업도 최근 5,000개를 상회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산별노조의 원조인 유럽의 노조들이 오히려 경영환경의 변화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기업별 교섭으로 선회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산업별 교섭에서 기업별 교섭으로 내려오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왜 우리의 일부 직업적 노동운동가들은 거꾸로 가려 하는 것일까? 동일산업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통일시킨다는 명분 아래 기업 밖에 있는 보신을 도모하는 노동꾼들의 전략에 기업내 근로자들이 현혹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기업들의 대응방안

물론 산별노조 전환여부는 전적으로 노조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 그러나 노조가 산별로 전환되었다 해서 기업들이 산별교섭이나 집단교섭에 응해야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역시 기업들이 선택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산별교섭의 폐해를 볼 때 산별교섭에 응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이 경우 산별노조가 기업별 지부에 교섭권을 위임하도록 함으로써 기업별 교섭체제를 유지하거나 부득이한 경우 회사와 산별노조간의 대각선 교섭을 해야 할 것이다.
불가피하게 산별·집단교섭을 하는 경우라도 교섭이 시작되기 전에 전제조건을 정해야 한다. 그 전제조건으로는 “합리적인 수준의 교섭위원 선정”, “타사 문제나 상급단체 지침 등을 이유로 한 쟁의행위를 하지 않는다”, “이중교섭 및 이중쟁의행위 금지”등이 있으며 이와 관련한 산별노조의 확답이 있은 후에 산별교섭을 진행해야 한다.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6년 8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