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에 휩쓸리는 한국경제

[경제시론] 2008-08-13 | 한국일보 논설위원 이의춘

한국경제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글로벌 경기침체와 고유가,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 등 대외부문의 초대형 악재가 ‘작고 개방된(Small open economy)’ 한국경제를 융단폭격하고 있다. 제3차 오일쇼크 위기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위기 등으로 수십년 만에 세계경제를 덮치고 있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초대형 폭풍)이 한국경제의 목을 바짝 조르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론 고유가와 수입 원자재가격의 폭등에 따른 고물가가 서민·중소기업 등 경제주체들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고 있고, 물가급등은 소비심리 위축, 투자감소로 이어져 성장률마저 추락시키고 있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신규 일자리도 쪼그라들고 있다.
고물가 속에서 성장은 뚝 떨어지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국면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수출만이 두 자릿수의 증가율을 지속하면서 그나마 효자 역할을 하고 있지만, 원유 수입액의 폭증으로 경상수지마저 올해 100억 달러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상수지의 적자 전환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대외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8~9월에는 순채무국으로 다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대외신인도에 악재가 되고 있다. 우리 경제가 고물가·고유가·고경상적자 속 저성장·저소비·저투자·저고용 등 신 3高 4低로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소비자물가의 정부 예상치 4.5%는 5~6%대로 치솟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물가급등으로 기대 인플레이션도 높아지면서 물가상승─임금인상의 악순환(Wage-price spiral)이 우려되고 있다. 대외경제여건 악화로 6%대로 낮춰 잡은 성장률은 4%대도 힘들 것으로 국내외 경제연구소들은 내다보고 있다. 외국 이코노미스트들은 3%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시중에선 이명박 정부가 대선공약으로 내건 ‘747(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10년내 세계 7대 강국 도약)’ 캐치프레이즈가 ‘7% 물가인상, 4% 성장, 7% 실업률’로 추락하고 있다는 비아냥마저 제기되고 있다.
일자리 격감도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신규 일자리는 14만 7,000명에 그쳐 4개월째 20만 명을 밑돌았다. 새로운 일자리가 15만 명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05년 2월 이후 처음이다. 이명박 정부가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60만 명의 일자리 창출은 경기침체 물결에 휩쓸려갔다. 정부가 이후 잇달아 하향조정한 45만 명, 30만 명은커녕 지난 7월초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에서 또다시 낮춘 20만 명도 달성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경기가 하강하면서 취업대란이 우리 경제의 최대 복병으로 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생산현장을 뛰는 기업인들이나 서민들은 외환위기보다 더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바로미터인 코스피지수는 2,000선에서 지난 7월 1,500선으로 폭삭 주저앉으면서 투자자들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한국의 버핏’으로 각광받으며, 투자자들의 돈을 빨아들이던 박현주 펀드(중국, 인도 등에 투자하는 친디아펀드, 인사이트펀드 등)는 중국 등 신흥시장 증시가 반토막 나면서 올 들어 수익률이 급전직하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시중 부동자금이 600조 원 이상 되고, 통화증가율은 여전히 높은데도, 돈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대다수 중소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이나 기업공개, 증자가 안 돼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견·중소 부동산업체들은 매일매일 부도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지방 미분양 물량이 13만 가구가 넘으면서 자금이 돌지 않고, 금융회사로부터 문전박대 당하면서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고 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쬘 때 우산을 경쟁적으로 제공하던 금융회사들이 비바람이 몰려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산을 서둘러 회수하는 샤일록의 상혼을 발휘하고 있다.
서민들은 그야말로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주부들은 물가는 치솟고 있는데, 남편 월급은 제자리이고, 내집 마련 등을 위해 빌린 돈의 이자부담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의 한 주부는 “남편 월급과 아이들 성적 빼고는 다 올랐다”며 “장 보기가 겁난다. 매달 적자가 나는 가계부 작성은 아예 포기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 혼선도 경제주체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 출범 초기 수출증가를 통한 성장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무리한 고환율정책을 펴다가 원유 등 수입물가의 급등을 초래했다. 세계 각국이 달러화에 대한 자국 통화의 평가절상을 통해 수입물가의 급등 충격을 흡수하고 있는 동안 우리나라만 인위적인 원화 약세정책을 밀어붙여 물가폭등이란 자충수를 뒀다. 물가급등을 초래한 경제팀에 대한 비판이 봇물 터지자, 부랴부랴 성장 대신 물가안정 정책으로 선회했지만, 오락가락 정책에 대한 시장의 불신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국경제는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 갖가지 악재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禍不單行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경제주체들이 어떤 자세와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정부는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현 경제위기를, 경제체질을 튼튼히 하고 새로운 성장의 전기로 삼기 위한 지도자의 국민통합적 리더십이 긴요하다. 고물가로 신음하는 서민과 중산층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위적인 경기부양보다는 물가안정에 주력해야 한다. 전기, 가스, 수도, 교통 등 공공요금 인상을 최소화시켜 기대 인플레이션 심리를 차단해야 한다.
정부는 경제가 회복될 때까지 국민들에게 달콤한 말을 제시하는 대신 고통을 분담해서 경제난국을 극복하자고 호소해야 한다. 특히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성장잠재력 확충을 정책의 최우선순위로 둬야 한다. 기업들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규제 전봇대를 서둘러 뽑아 민간부문의 활력을 제고해야 한다. 비효율과 방만경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 등 구조조정도 확고하게 추진, 작은 정부를 실천해야 한다. 촛불집회에 혼쭐이 난 이명박 정부가 최근 공기업 개혁을 상당 부분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심히 우려스럽다. 노조 등 이해집단의 저항이 큰 공기업 개혁을 정권초기에 밀어붙이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의 고질적 문제점인 에너지 다소비 경제구조를 에너지 저소비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정부부터 에너지절약에 솔선수범하고, 기업 등에게 에너지절감형 생산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가정은 안 쓰는 전기코드 뽑기 등 작은 것부터 실천해서 가정마다 10리터씩 기름을 절약하자는 에너지절약시민운동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일본이 에너지 저소비형 생산체제 구축과 신재생에너지 확충 등으로 에너지 소비량을 1980년 2차 오일쇼크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음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기업들은 생산성 향상과 원가절감에 힘써 제품가격 인상을 최대한 흡수해야 한다. 대기업들은 경제5단체가 시작한 ‘채용 10% 더하기 운동’에 적극 동참해서 청년실업 해소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노동계도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노사상생을 통한 위기 극복에 합심해야 한다. 노조의 과격한 정치투쟁과 폭력시위는 기업의 생산에 타격을 줘서 일자리만 줄일 뿐이다.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맞아 환란 당시 금모으기 운동처럼 경제주체들의 합심과 고통분담 노력이 절실하다. 노·사·정이 경제가 회복될 때까지 머리를 맞대 고용안정 속 임금인상 자제와 투자활력 제고 등의 대타협안을 도출해야 한다.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8년 8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