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섬기는 정부’란 ‘고객서비스 정신’을 가진 정부

[경제시론] 2008-03-11 |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박효종

이번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을 상대로 한 여러 가지 약속들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국민을 섬기는 정부가 되겠다”는 약속이다. 또 “섬기는 리더십을 구현하겠다”는 공언도 마음에 와 닿는다. 정말로 그동안 국민들이 굶주려왔던 말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국민을 섬긴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할지는 고민해봐야 할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섬긴다’는 것의 실체는 시장 현장을 보면 알아

섬긴다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이벤트성으로 보여주는 것도 쉽다. 사각 탁자를 원형 탁자로 바꾸는 것이나 대통령이 연설하는 단상을 낮추는 것이 바로 그런 방안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국무총리를 ‘만인지상(萬人之上) 일인지하(一人之下)’라는 전근대적 의미를 갖는 직책으로 부르는 것도 고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섬긴다는 것은 말의 문제만은 아니고 실체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섬긴다는 것의 실체가 손에 꽉 잡히는 것은 아니라는 데 어려움이 있다. 섬기는 태도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는 태도다. 혹은 하인이나 머슴, 심부름꾼이 주인을 대하는 예의바른 태도다.
두말할 나위 없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은 주인이고 권력을 위임받은 국정책임자들은 머슴, 그것도 상머슴에 불과하다. 당연히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국정책임자들은 국민을 주인 섬기듯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국민의 범주가 예상 외로 복잡하다는 데 있다. 남녀의 구분은 기본이고 지역적·이념적·세대적으로 복잡하게 나뉘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국가적 쟁점이 생길 때마다 갈등과 대립이 싹튼다. 요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군복무 가산점 문제만 해도 그렇다. 여성계는 군복무자에 대한 보상은 가산점 말고 다른 방식으로 풀어가라고 주장하고 있는가 하면, 재향군인회는 그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보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주인의 범주가 다양하다면 섬긴다는 것은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다. 주인이 여럿인데 머슴은 하나라면, 머슴은 누구의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럴수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혹시 이 섬긴다는 것의 실체를 시장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때로는 “소비자가 조심하라(caveat emptor)”는 준칙이 통용되는 ‘판매자의 시장(seller’s market)’도 없지는 않으나, 일반적으로 ‘구매자의 시장(buyer’s market)’이라면 ‘소비자는 왕’이라며 고객서비스를 강조한다. 서비스가 부실하면 기업이나 회사는 살아남을 수 없고 시장에서 퇴출될 뿐이다.
관청에서 공무원에게 인사를 받기는 어려워도 백화점이나 음식점에서는 종업원으로부터 살가운 인사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심지어 욕쟁이 할머니가 욕을 해대도 손님들은 그 욕을 먹으면서 즐겁게 음식을 먹는다. 그것도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말이다.
왜 사람들은 냉면집에서 울면서 겨자를 먹는가. ‘울면서 겨자를 먹더라도’ 냉면집을 찾은 손님 자신이 겨자 넣은 냉면이 먹고 싶어서 먹는 것일 뿐, 싫어하면서 겨자 넣은 냉면을 억지로 먹는 사람은 없다. 울면서 겨자를 먹더라도 냉면 주인에게 사의를 표하는 고객들은 많다. 바로 이런 것들이 고객서비스의 비밀이다.
이런 고객서비스의 개념이 정부영역에서도 살아 꿈틀거릴 수 없을까.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섬기는 정부’와 ‘섬기는 리더십’이 구현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위에서 군림하기보다 친절하고 효율적이며, 국민들로부터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변신한다면, ‘고객만족’이나 ‘고객서비스’라는 개념을 과감하게 정책이나 정치의 영역에 원용하는 정부가 아닐까. 혹은 적어도 정부에서 하는 공공서비스가 고객서비스 수준으로 격상된다면, 국민들은 섬긴다는 것의 실체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공공서비스를 고객서비스의 범주로 바꾸는 데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세금고지서를 받으며 환한 미소를 짓는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혹은 세금고지서에 나와 있는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내겠다고 호기 있게 말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물론 구세군 냄비에 돈을 내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그 이유라면, 구세군 냄비는 자발성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그 목적이야 어떻든 징세가 국가의 강제적 권한임을 입증하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교통범칙금 발부나 체포·구금과 같은 일부 서비스도 정부로부터 연유하는 것이긴 하나, 이런 유형의 서비스는 결코 수령자가 기대하거나 원하는 서비스는 아니다. 자신을 체포하려는 경찰에게 칼을 휘두르며 극력 반항할지언정, 고맙다고 사의를 표명하는 마약밀매범이나 소매치기범이 과연 있을 수 있겠는가.

신뢰와 확신을 주는 ‘믿음직스러운 국가’가 되어야

이처럼 시장서비스와 국가서비스 사이에 존재하는 부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섬기는 리더십’이 공동체 전체를 관통하고 또 국민들의 실생활에서 살아 숨쉬게 하려면, 실용주의적 개념들과 접목되어야 한다.
실용주의적 접근의 핵심은 의외로 간단하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는 것을 넘어서서 그 정부가 표방한 ‘섬기는 리더십’의 혜택을 누리고 있음을 실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또 ‘정부로부터 다스려지는 존재’가 아니라 ‘정부로부터 대접받는 존재’라는 느낌을 체감하게 되는 사람들이 다수가 될 때, 실용정부가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신뢰와 확신을 주는 ‘믿음직스러운 국가’가 필수적이다. ‘믿음직스러운 국가’란 아침 6시에 문밖에서 작은 소리가 날 때 “아, 우유가 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국가다. 혹은 밤에 눈이 쏟아져 내릴 때 “내일 출근길은 어렵겠구나”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눈은 왔지만 제설작업이 순조로워 내일 출근길은 지장이 없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정부가 ‘서비스 정부’다.
이명박 정부는 말로만 ‘섬기는 리더십’을 표방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을 만큼의 서비스를 공여할 수 있을지 앞으로 5년 동안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08년 3월호 [시장경제 논단]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