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컴퍼니, 정상적인 해외경영활동 과정에서의 운영전략

[경제시론] 2013-07-09 | 전경련 경제본부 금융조세팀장 홍성일

최근 소위 조세피난처(세금이 없거나, 매우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국가)로 일컬어지는 지역에 설립된 우리 기업의 해외현지법인 현황과 개인의 신상이 공개됨에 따라 페이퍼컴퍼니(물리적 실체 없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기업)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바 있다.
일부 인터넷뉴스에서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보유한 한국인 명단을 여러 차례에 걸쳐 발표하고, 국내 주요 그룹들이 운영 중인 해외법인이 100개가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로 인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있다는 것만으로 비자금 조성, 역외 탈세를 저지른 것처럼 비난 여론도 높아졌다. 조세피난처에 물리적 실체도 없는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하는 것은 탈세나 비자금 조성 목적이 아니냐는 시각도 많다.
하지만,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것은 해외경영활동을 하면서 나타날 수 있는 정상적인 운영전략 중 하나이다.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페이퍼컴퍼니에는 사실 긍정적인 기능이 많다. 설립과 청산이 간편하고, 운영비용이 적게 들 뿐 아니라, 글로벌 투자도 쉽게 진행할 수 있다. 진출하고자 하는 해외시장에 대한 접근도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글로벌 자금조달과 해외 상장절차 측면에서도 상대적으로 간편하다. 이 같은 이유에서 우리 기업들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해외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해운업 특성에 따른 SPC 활용 많아

먼저, 해운업의 특성에 따른 경우이다. 해운회사는 선박을 매입하기 위한 자금을 대주사로부터 원활하게 끌어들이기 위해 SPC(유동화전문회사)를 활용 중이다. 자금을 빌려주는 대주단 입장에서도 해운회사가 부도와 같은 위기상황 시 선박이 넘어가는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별도의 SPC를 설립하여 해운회사와 선박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편이 유리하다. 해운회사 입장에서도 선박을 본사 명의로 직접 구입할 경우, 회계장부상 부채로 잡히게 돼 유동성 확보는 물론 위험관리도 어려워지기 때문에, 별도의 SPC를 통해 선박을 관리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즉, 해운회사가 해외 SPC를 설립하여 선박을 보유하는 것은 대주사와 해운회사 입장에서 모두 득이 되는 거래라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해운회사는 해상운송수수료 수입액에 대해 정상적으로 법인세를 납부하게 된다. 이 같은 이유로 많은 해운회사들이 선박 취득에 따른 담보권 설정과 행사절차가 간편한 파나마, 마셜군도 등에 SPC를 설립하여 선박을 매입하고 있다.
편의치적이 보편화된 해운업의 특성상 관련 경비 절감을 위해 선주 소유 선박을 SPC 명의로 등록하는 경우도 많다. 편의치적이란 선주가 속해 있는 국가의 엄격한 요구조건과 의무를 피하기 위해 선주가 소유하고 있는 선박을 자국에 등록하지 않고 제3국에 등록하는 형태를 말한다. 일부에서는 해운업체가 상대적으로 높은 세금부담과 선원법 등 각종 규제를 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조세피난처 국가 명의로 선박을 등록시켜, 소득을 해외로 반출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편의치적은 이른바 해운 강국이라 불리는 그리스, 일본 등에서 더욱 자주 사용되는 관행이며, 우리 해운업체의 편의치적 이용률은 국제 평균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해외시장 개척의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

둘째,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기업들은 대중국 교역을 위해 홍콩 현지법인을 운영한다거나, 자원개발 탐사, 해양플랜트, 태양광 사업에 대한 투자를 위해 여러 지역에 다양한 목적으로 SPC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리비아, 이란 등 국제적 제재를 받고 있는 국가와의 거래 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SPC를 운영하기도 한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도 우리 기업이 버진아일랜드에 설립한 시행법인을 통해 진행한 바 있다. 해외법인과의 M&A를 통한 외국법인이 소유하고 있던 SPC를 자연스럽게 취득하는 경우도 있다. 해외법인 인수 시, 해외법인이 운영 중이던 SPC를 자연스럽게 취득하는 경우도 있고, 합작투자 파트너사인 외국법인의 경영사정 악화로 인해 불가피하게 상대 회사가 보유한 SPC를 취득하는 사례도 많다.

국내 기관투자가, 해외자산 투자를 위해서도 활용

셋째, 글로벌 M&A 과정에서 자금조달과 수익분배, 원활한 투자자금 모집과 수익 분배를 위해 SPC를 활용하기도 한다. 해외 현지에서 투자자금을 조달하고, 해외에 자회사를 상장하는 과정에서 SPC가 유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이유로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기관투자가도 해외투자 시 세무부담을 줄이고 투자 대상 국가의 각종 법령상 제약을 우회하기 위해 SPC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 영국 등 많은 국가들은 외국법인이 부동산이나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 세무신고 등을 위해 많은 정보를 해당 국가에 제공해야 하는데, 본사 입장에서는 당해 해외투자사업과 관련 없는 사항에 대해서도 보고해야 하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케이만제도, 룩셈부르크 등에 해외 SPC를 설립하여 미국 또는 영국 등 해외자산을 취득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해외 SPC가 투자 주체가 되어 피투자국에 세무신고 등 관련 행정절차를 수행하게 하고,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해외 SPC로부터 배당을 받고, 이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 정상적으로 세금을 납부하는 형태로 해외투자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2012년 수출액 5,400억 달러, 2년 연속 무역규모 1조 달러, 세계 무역 8강 진입’, 세계를 누비고 있는 우리 경제의 현주소이다.
해외시장 개척의 선봉에 서 있는 10대 그룹의 해외매출 비중은 60%에 달하며, 일부 기업은 한 해 매출의 85%를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말 그대로 우리 기업들은 세계시장을 무대로 글로벌 기업들과 무한경쟁 중이다. 글로벌 경쟁 양상에 따라 해외사업은 여러 형태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다양한 이유와 형태로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들을 마치 불법을 저지른 기업인마냥 색안경을 쓰고 본다면, 우리 기업의 정상적인 해외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

(hong@fki.or.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3년 7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