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자재 가격 전망과 기업의 대응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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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론]2007-11-07 | 한국경제신문 전문위원 한상춘
- 기업들이 내년도 경영계획을 짤 때 가장 큰 변수 중의 하나가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다. 이미 원자재 가격은 상당 기간 동안 고공행진이 지속돼 기업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달러 가치의 향방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지속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달러 가치가 약세를 보임에 따라 대체관계에 있는 상품시장에 자금이 지나치게 많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 이후 각국의 통화 가치가 미국측 요인에 의해 주로 좌우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달러 가치의 향방은 미국경기 전망과 미국금리 인하폭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미국경기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의 파장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가 가장 큰 변수다.
이론적으로 각종 위기는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같은 사건을 계기로 발생한 유동성 위기(혹은 신용위기)가 조기에 해결되지 않을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금융시스템의 위기로 전염된다. 한 나라 경제의 동맥 역할을 하는 금융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실물경기가 침체된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자주 비교되는 1998년에 발생한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 사태에서는 유동성 위기에서 시스템 위기로 넘어가기 전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FRB)의 세 차례에 걸친 금리인하로 조기에 수습됐다. 오히려 정보기술(IT) 혁명에 따른 '신경제(New Economy)'로 세계경기는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현 시점에서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라 발생한 유동성 위기가 앞으로 시스템과 실물경기 위기로 전염될 것인가에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돼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만약 모기지 부실이 앞으로 시스템 위기로 전염된다면 세계경기가 크게 둔화되면서 국내기업들의 경영환경은 크게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만큼 앞으로 미국경기를 보는 시각이 크게 두 가지로 엇갈리고 있다. 하나는 그동안 FRB의 긴급 유동성 지원과 통화정책 수단으로 쓰지 않던 재할인율과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의 대폭 인하로 모기지 부실로 발생한 유동성 위기가 해결되면서 내년에 미국경기가 크게 둔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연착륙(Soft Landing) 시각이다. 다른 하나는 FRB의 조치가 오히려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을 발생시킨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지연시켜 앞으로 세계경기가 더 침체될 것이라는 경착륙(Hard Landing) 견해다.
보는 시각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으나 내년 미국경기는 연착륙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악의 경우 미국경기가 경착륙돼 달러 가치가 폭락하더라도 그동안 세계 각국들이 아무리 자국의 이해관계를 중시한다 하더라도 급격한 변화와 혼란을 선택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외환시장에서는 그렇다.
올 8월 이후 버냉키 의장의 미국의 무역적자와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 현안이 비록 속도는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개선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는 진단은 향후 외환시장의 방향성을 이미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현 시점에서 달러 가치는 폭락보다는 세계 각국 간의 묵시적인 공조와 합의하에 세계경제의 최대 현안인 글로벌 불균형 문제를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질서있는 조정, 다시 말하면 연착륙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달러 가치 폭락에 따라 원유를 비롯한 상품시장에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는다면 원자재 가격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 이후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글로벌 머니 게임에 의해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들어 국제간 자금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각종 글로벌 펀드들은 주식, 부동산뿐만 아니라 예술품, 골동품에 이어 심지어는 송아지, 물, 고철, 드라마, 아트 등에 이르기까지 돈만 되면 어디든 투자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세계경제질서는 가히 '혁명적'이라 불리울 만큼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위기를 우려하는 경고음도 잇따르고 있다.
더욱이 글로벌 펀드가 중심이 돼 개인들의 富를 늘려주는 글로벌 머니 게임에 앞으로는 세계 각국들이 보유한 외화자산을 외국으로 돌려 國富를 증대시키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이미 이 분야에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싱가포르 투자청(GIC)을 비롯해 프랑스, 아일랜드, 노르웨이에 이어 중국과 일본이 가세할 경우 돈을 무기로 한 일종의 국가 간의 전쟁이 터지는 셈이다.
최근 선진국과 개도국 자금 간에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머니 게임은 'S'자형 투자이론으로 잘 설명된다. 이 이론은 모든 신기술과 제품은 시장점유율을 일일이 측정하지 않아도 점차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소비자와 가정 속에 약 10% 정도가 보급되고 나면 급속히 퍼져 나간다. 즉, 한 제품이 시장을 10%를 점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이후 90%를 점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같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이 이론을 세계 각국의 경제발전 단계에 적용하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인 선진국은 중장년기에, 1,000달러에서 3만 달러에 속한 개도국과 중진국은 청소년기에, 1,000달러 이하인 저개발국은 유아기에 해당된다.
투자의 3원칙인 수익성·안정성·환금성으로 볼 때 선진국은 수익성이 낮은 대신 안정성이 높으나 개도국은 이와 반대이다. 그러나 요즘은 유동성이 워낙 풍부해 선진국, 개도국 자금 모두가 환금성은 투자시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선진국 자금들은 높은 수익을 쫓아 잉여자금은 펀드형태로, 잉여자금이 없을 때에는 금리차를 이용한 캐리자금 형태로 개도국에 유입된다.
반면, 개도국 자금은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을 중시해 가장 안전한 자산(Safe-haven Asset)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국채를 비롯한 선진국 자산에 여전히 투자한다. 지금까지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이 안정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선진국 자금이 유출되더라도 이를 개도국 자금이 메워주는 국제간 자금흐름 메커니즘이 잘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갈수록 심화되는 국제수지 불균형으로 미국 국채를 비롯한 선진국 자산의 안정성이 떨어지면서 지금까지 유지돼온 국제간 자금흐름 메커니즘이 흐트러지는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 이후 중동 산유국과 아시아 국가들의 과잉저축분이 미국 국채에서 선진국의 기업인수와 같은 실물자산으로 투자방향이 옮기는 추세다. 그 중에서 개도국 자본이 선진국의 항만, 에너지와 같은 기간산업을 인수할 경우 선진국에게는 경제안보상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이 점이 2차 대전 이후 '세계화'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를 외쳐왔던 선진국들이 최근 들어서는 모든 경제 현안을 자국의 주권확보 차원에서 바라보는 '경제 애국주의(Economic Patriotism)'를 낳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그동안 선진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경제 애국주의로 나아감에 따라 자원보유국을 중심으로 개도국들의 반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올 들어 세계경기가 둔화된다 하더라도 유가와 국제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이 지속되고 있고 대내외 증시에서 원자재 관련 업종의 주가가 크게 상승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원자재 가격은 글로벌 머니 게임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선진국의 경제 애국주의와 개도국의 자원민족주의로 대변되는 경제이기주의를 어떻게 절충해 나가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내년도 경영과 투자계획을 수립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는 브릭스와 포스트 브릭스, 중동지역 등에 대한 현지 진출비중을 늘리는 일이다. 동시에 원자재 가격 움직임이 크게 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위험관리에 그 어느 때보다 신경써야 한다. 이제는 환율뿐만 아니라 원자재와 관련된 위험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기업 자체적으로 내부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