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정상회의와 서울 컨센서스

[경제시론] 2010-11-08 |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최원기

G20 서울 정상회의는 의장국 역할을 맡은 우리나라에게는 글로벌 위기극복을 위한 조정자 역할이라는 막중한 과제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경우 새로운 국운상승이라는 외교적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세계경제가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나 서서히 회복세로 돌아섬에 따라 그동안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G20 참가국들 사이의 이견과 이해대립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이견 조정과 조율을 맡은 의장국인 우리나라에게는 매우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번 경주에서 개최된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는 미·중 간 ‘환율전쟁’으로 치닫던 갈등을 봉합하고, 향후 환율문제의 해법을 제시할 방향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특히, 의장국인 우리나라의 주도적인 중재노력을 통해 미·중을 비롯해 참가국 모두가 수긍하는 타협책을 도출했다는 것은 곧 다가올 G20 서울 정상회의 결과에 대한 섣부른 의구심과 불확실성을 제거했다는 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이제 앞으로 남은 과제는 경주 재무장관 회의에서 마련된 ‘경주합의’의 모멘텀을 살려서 세계경제가 ‘위기를 넘어 다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확고한 발판이 되도록 ‘G20 서울선언’으로 보다 구체화하는 일이다.

G20은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 구축의 핵심적인 토대 될 것
G20 서울 정상회의는 글로벌 위기극복과 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회의다. 특히, G20 정상회의는 세계경제 최상위 협의체로서, 세계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방안을 선진국과 신흥국들이 함께 논의하는 자리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발생 이후 세계경제 세력구도의 다극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의 일방적 주도와 능력에 기반한 국제문제의 해결은 이제 불가능하게 되었고, 향후 세계경제의 미래는 기존의 선진국들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 신흥국들과 새롭게 어떠한 협력체제를 구축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미래의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의 판을 짜는 중심체가 G20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1999년 장관급 협의체로서 출범한 G20은 2008년 정상회의로 전환되면서 재정정책 공조에서부터 금융규제 문제까지 정치적 구속력을 갖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국제협력체로 진화하고 있다. G20은 주요 선진국 및 신흥개도국이 모두 참여함으로써 선진국과 개도국의 새로운 협력모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G20 정상회의를 기반으로 한 국제공조가 성공을 거둘 경우, G20은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 이후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 구축의 핵심적인 토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는 거시경제정책 공조, 금융규제 및 국제금융기구 개혁 등 기존 G20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주도하여 제안한 글로벌 금융안전망, 저개발국 지원 등 새로운 의제도 다루게 된다. 특히, 최근 미국과 중국 간에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는 ‘환율전쟁’ 문제도 경주합의를 바탕으로 진일보한 결과를 도출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중 간 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었고, 미국이 위안화 환율문제를 G20 서울회의에서 제기하겠다고 공언함으로써 환율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그동안 우리 정부가 의욕적으로 준비하고 노력한 성과가 퇴색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경주회의에서 환율문제를 미·중 간의 양자 이슈가 아닌 G20 차원의 글로벌 불균형 해소의 문제로 접근하여 적자국과 흑자국 간의 역할분담에 대한 정치적 원칙을 극적으로 도출하는 데 성공하여 G20서울 정상회의의 최대 성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
G20 국가들은 향후 경상수지 규모를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환율의 경쟁적 평가절하를 자제함으로써 시장결정적인 환율제도로 이행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경주 환율합의는 지난 1차 워싱턴 정상회의에서 우리나라가 제시한 무역장벽 신설금지 합의안(Standstill)에 비견할 만한 매우 의미 있는 조치다. 이 합의를 계기로 앞으로 개별국가의 환율시장 개입을 통한 자국통화의 경쟁적 평가절하 시도에 대해 G20 차원의 강력한 정치적 압력수단을 구축한 셈이다. 관건은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경주합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실천할 행동계획을 도출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환율문제 조정을 위한 국제공조체제에 합의한다면, G20 정상회의의 정당성은 보다 강화되고 진정한 세계경제의 최상위 협력체로서 안착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의장국 역할의 성공적 수행을 기대하며
세계은행이나 IMF 등 국제금융기구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개혁방안도 G20 정상회의의 주요한 의제이다. IMF 등 국제금융기구의 지배구조는 2차대전 직후 설립될 당시의 세력구도를 반영하여 선진국 중심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브라질, 인도 등 세계경제 성장의 견인차로 등장한 신흥국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지난 경주회의에서 합의한 대로 IMF 지분(quota)의 6%를 신흥국으로 이전하는 문제가 매듭지어질 것이다. 또한, IMF와 세계은행의 이사회 규모 및 구성방안을 개선하여 신흥국의 목소리와 이해관계를 보다 잘 반영할 수 있도록 개혁하고, 금융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감시기능을 강화하는 방안도 보다 구체화된다.
또한, 우리나라가 신흥국의 선두주자로서 신흥국의 관심사항을 반영하여 코리아 이니셔티브(Korea Initiative)로 새롭게 제안한 저개발국 지원문제와 글로벌 금융안전망 분야에서도 진전된 합의가 도출될 것이다. 신흥국들은 미국 등 다른 곳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갑자기 자본이 빠져나가 외환유동성이 부족해지는 외환위기를 반복적으로 겪어 왔다. 우리나라가 제안한 글로벌 금융안전망은 신흥국의 자본이동에 대한 취약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양자·지역 국제적 차원의 안전망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안전망 분야에서는 이미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력을 통하여 IMF 대출제도의 낙인효과(Stigma Effect)를 없애기 위해 작년에 IMF가 도입한 탄력대출제도를 개선했고, 새로이 예방대출제도를 도입하여 신흥국의 유동성 위기 차단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을 이끌어냈다. 이번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는 이러한 방안들에 대한 공식적인 합의가 도출되어 우리나라가 기여한 G20의 중요한 성과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제안한 개발의제와 관련하여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는 개도국의 빈곤감소 및 개발격차 해소를 통해 새로운 수요기반을 창출하고 개도국의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협력방안을 논의할 것이다. 특히, 개도국의 경제성장과 복원력을 제고하기 위한 인프라, 무역, 민간투자, 인적자원 등 핵심 분야에서의 구체적 협력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다.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는 G20 차원의 저개발국 지원원칙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주요 분야별로 다년간 행동계획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의장국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한다면 G20체제가 안착하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실무 차원의 정교한 정책조율과 중재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도출하고, 정상 간 이에 대한 확고한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치밀한 외교적 리더십도 발휘한다면 G20 정상회의의 성과는 ‘G20 서울합의’로 구체화될 것이다.

(wchoe06@mofat.go.kr)

- 이상은 월간 전경련 2010년 11월호 [초점] 에 게재된 글입니다.